번역가 안톤 허 에세이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신간] 정지아의 술과 인생예찬…'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 정지아 지음.
베스트셀러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가 위스키를 처음 맛본 것은 군사독재 시기 수배 생활 중 오른 고향 지리산의 산장에서였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던 시절이었음에도 무리해서 위스키를 챙겼던 것은 한겨울 지리산의 혹독한 추위를 불콰한 취기로 이겨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늦은 밤 뱀사골 산장에 모인 낯선 이들 사이에서 작가는 남몰래 '패스포트' 위스키를 꺼내서 마시다 그만 정체가 발각되고 만다.

작가를 알아본 사람들 역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독재에 저항하던 투사들이었던 것. 지리산의 깊은 산중에서 이들은 그렇게 위스키를 나눠마시고 잠시나마 해방과 연대 의식으로 충만한 밤을 보낸다.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는 정지아 작가가 처음으로 펴낸 에세이집이다.

술 중에 조니워커 블루라벨, 그다음으로는 시바스 리갈 12년산을 가장 좋아한다는 작가가 술을 매개로 삶과 사람에 대해 풀어놓은 이야기 34편을 모았다.

제목만 보고 글 쓰는 사람의 흔한 술 예찬론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책 안의 글들은 겉으론 술과 음주를 예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술을 함께 마시는 사람과 그들과 교류하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한 작가의 그윽한 사랑 고백이다.

애주가 독자들이라면 읽다가 자신도 모르는 새 술병의 뚜껑을 따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마이디어북스. 320쪽.
[신간] 정지아의 술과 인생예찬…'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안톤 허 지음.
한국문학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해온 번역가 안톤 허의 에세이다.

하기 싫은 법학 공부를 꾸역꾸역하면서 문학도의 꿈을 꾸던 시절, 늦은 나이에 문학 공부를 시작해 한국문학 번역가로 데뷔한 이야기, 정보라 소설집 '저주토끼'로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일 등 문학 소년에서 세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한국문학 번역가가 되기까지의 삶이 담겼다.

예전보다 조금 나아졌다고는 해도 문학 번역가들에 대한 여전히 낮은 처우와 '갑질' 현실에 대한 일침,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문학의 위상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국 현실에 대한 고언은 거침없고 신랄하다.

"한국 언론들은 종종 한국에서 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느냐며 번역가를 성토하곤 하는데 이런 풍토에서 제대로 된 문학 번역가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토록 문학을 멸시하는 나라에서 끊임없이 문학작품이 생산되는 것만도 신기한 일인데 노벨문학상까지 바라다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괴이한 욕심이다.

"(88쪽)
번역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온전히 담은 글들에서 나타난 저자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관습과 편견에 저항하며 질주하는, 문학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신경숙, 정보라, 박상영, 박서련 등 한국 작가들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며 "한국문학이 위대하다면 세종대왕이나 한글, 교육제도나 수능 때문이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에 대범하고 비범한 작가가 유독 많다는 사실 때문에 한국문학은 위대하다"고 말한다.

어크로스. 23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