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서 자율주행 지원 소프트웨어인 'FSD V12'를 시연하는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1170만여 명이 시청했다. /일론 머스크 엑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서 자율주행 지원 소프트웨어인 'FSD V12'를 시연하는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1170만여 명이 시청했다. /일론 머스크 엑스
“라이브 방송 시작할게요. 테슬라 본사에서 출발합니다. 인공지능(AI)이 어떻게 운전하는지 봅시다. 어쩌면 저커버그를 만나서 싸울지도 몰라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테슬라 팬들은 엑스(옛 트위터)에 라이브 스트리밍 영상이 올라오자 환호했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예고대로 자율주행 지원 소프트웨어인 FSD(Full-Self Driving) 12 버전 시연을 했기 때문입니다.

모델S 운전석에 앉은 머스크는 스마트폰으로 직접 자율주행 장면을 찍으며 45분간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만담 게스트’로 테슬라 자율주행을 이끄는 아쇼크 엘루스와미 오토파일럿 소프트웨어 이사가 출연했습니다.

테슬라 FSD는 사람이 운전을 책임지는 ‘자율주행 레벨2’ 수준의 주행 보조 옵션입니다. 2019년 출시 후 꾸준히 업데이트됐고 현재 11 버전입니다. 시내 자율주행이 가능한 FSD 베타 버전도 있습니다. FSD 베타는 북미 운전자 약 40만명이 테스트 중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머스크는 아직 개발 중인 FSD V12의 성능이 매우 놀랍다며 라이브 영상을 선보였습니다. 이 시연 영상의 시청자는 현재까지 1170만명에 달합니다.
테슬라 모델S
테슬라 모델S

인간처럼 AI와 카메라만으로 운전

“FSD 운전이 정말 부드럽습니다. 영상으로 전해질지 모르겠네요”

머스크와 아쇼크는 내비게이션에 무작위로 위치를 선정하고 팔로알토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영상 속 모델S는 도로 위 좁은 공사 구간을 지나고 스스로 차선 변경합니다. 과속방지턱에선 알아서 속도를 줄입니다. 신호등 빨간불에 멈추고 좌회전 신호에 맞춰 핸들을 틀어 좌회전합니다. 회전교차로에선 차량 두 대를 먼저 보내고 뒤따릅니다. 비보호 좌회전도 해냅니다. 머스크는 연신 운전을 잘한다고 감탄합니다. FSD가 우버 기사라면 별점 5개를 주겠다고도 했습니다.

“AI와 카메라만으로 운전하는 겁니다. 두뇌와 눈으로 운전하는 사람과 똑같지요”

5분 정도 달렸을까요. 머스크는 본론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FSD V12는) 과속방지턱에서 속도를 줄이라는 프로그래밍 코드가 없어요. 그냥 비디오만 보고 학습한 겁니다” 모델S가 도로 위 자전거를 슬쩍 피해 가자 조용히 보스 눈치(?)만 보던 아쇼크도 한마디 거듭니다. “저 자전거 탄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FSD 프로그램에 자전거 탄 사람을 피하라는 명령 코드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뉴럴네트워크(인공신경망)는 사람의 두뇌를 모방한 개념이다. 다층 구조의 인공 뉴런은 복잡한 계산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또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학습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된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은 뉴럴넷에 주행 영상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Getty Images Bank
뉴럴네트워크(인공신경망)는 사람의 두뇌를 모방한 개념이다. 다층 구조의 인공 뉴런은 복잡한 계산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또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학습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된다. 테슬라의 자율주행은 뉴럴넷에 주행 영상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Getty Images Bank
머스크에 따르면 기존 FSD V11엔 30만줄 이상의 C++프로그래밍 언어 코드가 있습니다. SW가 실제 도로에서 어떻게 주행해야 하는지 인간이 가이드라인을 줬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돌발 변수가 발생하는 현실 세계의 도로에서 이 방법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된 ‘도로에 누워 휴대폰을 본 학생들’ 사건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완전자율주행이 어려운 건 수많은 희귀 케이스의 대응 방법을 모두 코딩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운전 가이드’ 코딩 30만줄 다 뺐다

테슬라는 FSD V12에서 접근 방법을 바꿨습니다. ‘정지신호에서 멈춰라’ ‘여기서 몇 초 기다려라’ ‘회전교차로에선 이렇게 운전해라’ 등의 명령 코드를 단 한 줄도 넣지 않았습니다. 대신 AI에 수많은 테슬라 차량의 주행 영상을 보여주고 학습시켰습니다. 머스크는 이를 ‘순수 AI 주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대결에서 승리했던 바둑 AI ‘알파고’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 알파고는 16만개의 기보를 학습해 사람이 두는 수를 흉내 내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이후엔 스스로 무한대의 시합을 통해 능력이 향상됩니다. 알파고가 어떤 수를 둘지는 개발자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알파고가 기보를 보며 성장했듯, 현재의 FSD는 주행 영상을 보며 학습하는 단계인 셈입니다.
2016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마친 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경DB
2016년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마친 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경DB
“자율주행 완성을 위해 막대한 분량의 영상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이 데이터를 훈련할 값비싼 ‘뉴럴 네트워크(인공신경망) 하드웨어’도 있어야 하고요”

테슬라 운전자들의 FSD 베타 누적 주행거리는 최근 4억마일(약 6억4300만㎞)을 돌파했습니다. 이 데이터가 AI 훈련용으로 활용된다는 겁니다. 뉴럴넷 하드웨어는 엔비디아 GPU 1만개를 결합한 클러스터와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슈퍼컴퓨터 ‘도조’입니다. 지난 6월 테슬라는 도조가 내년 10월께 100엑사플롭스(1초에 1만경 번)의 연산 능력을 달성해 세계 최강의 슈퍼컴퓨터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회사는 도조에만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정지신호에서 멈춰라’ ‘저건 자전거다’
이런 프로그래밍 코드가 전혀 없어요
그냥 주행 영상만 계속 보여준 겁니다
인터넷이 끊겨도 아무 문제 없어요”
AI 훈련과 별개로 머스크는 자율주행 SW를 돌리는데 테슬라 차량의 컴퓨터 ‘하드웨어 3.0’(HW3.0)이면 충분하다고도 했습니다. “무슨 거대한 데이터센터와 자동차가 연결된 게 아니에요. 인터넷 통신이 끊겨도 주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순수 AI 주행은 지도도 필요 없어요. GPS 위치만 알려주면 길을 좀 헤매도 목적지엔 결국 도착해요. 사람이 운전하는 것처럼.”

코드를 없애면 AI를 제어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아쇼크는 코딩 대신 주행 데이터로 프로그래밍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율주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발견하면 올바른 예시를 보여주고 학습시킨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교통 규칙을 잘 지킨 양질의 데이터를 선별하는 게 최대 관건입니다. “평범한 운전은 전혀 도움이 안 돼요. 대부분 사람은 조금씩 법규를 어기죠. ‘스톱’ 사인에서 완전히 멈춘 운전자는 전체의 0.5%에 불과합니다”
테슬라 모델X 휀더에 장착된 카메라. 1대의 차량에 총 8대의 카메라가 주행 정보를 수집한다.
테슬라 모델X 휀더에 장착된 카메라. 1대의 차량에 총 8대의 카메라가 주행 정보를 수집한다.

머스크 "전 세계서 테스트 중"

모델S가 적색 신호등 앞에 멈췄습니다. 건너편 차선이 좌회전 신호로 바뀌자 차가 출발하려고 합니다. 순간 머스크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처음으로 개입했네요. 이런 문제로 아직 출시를 못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실수를 없애려면 뉴럴넷에 좌회전 신호등 비디오를 아주 많이 공급해줘야 합니다” 머스크는 FSD V12가 뉴질랜드, 노르웨이, 일본 등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시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차량은 처음 내비게이션을 찍었던 곳 인근의 갓길에 스스로 주차합니다. AI가 주행 경로와 목적지까지 사전 훈련 영상을 통해 학습했기 때문에 적당한 곳에 세운다는 겁니다. 머스크는 로보택시 얘기도 곁들였습니다. “손님이 보낸 사진을 통해 로보택시가 고객을 찾고 기다릴 수 있을 겁니다. ‘스타벅스에 내려줘’라고 말만 하면 매장 입구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내려주겠죠”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테슬라 엔지니어링 본사 전경. /테슬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테슬라 엔지니어링 본사 전경. /테슬라

"주행거리 60억마일 달성하면 출시"

머스크는 최근 부쩍 자율주행에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그는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바 테크’ 행사에서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과대평가 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자율주행의 잠재력은 가치가 너무 커서 실현 확률이 1%에 불과하더라도 엄청난 가치”라며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에 거의 근접했고, 향후 로보택시로 전환할 만큼 기술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작년 9월 머스크는 테슬라의 자율주행이 전 세계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으려면 60억마일(약 100억㎞)의 주행거리가 필요하다고 전망했습니다. 현재 FSD 베타의 주행거리는 4억마일입니다. FSD 베타 및 V12 출시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레이어드의 미국주식 투자 원칙」의 저자이자 유명 테슬라 투자자인 레이어드는 이 시기(60억마일 달성)를 2025년 이후로 예측했습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좋은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을 감안하면 FSD V12 상용화는 내년으로 예상된다”고 전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엑스에 올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FSD V12' 시연 방송 화면. /일론 머스크 엑스
지난달 26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엑스에 올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FSD V12' 시연 방송 화면. /일론 머스크 엑스
이제 두 남자가 돌아갈 시간입니다. 긴장이 풀린 걸까요. 아쇼크가 보스에게 농담을 던집니다. “그런데 결투는 안 하세요?”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 친구(저커버그) 어디 살지? 구글로 찾아볼까?” 낄낄대던 두 남자는 구글이 알려준 장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합니다. “뭐 노크는 할 수 있겠지. 여기 사는지 모르겠지만 가보자고”

운동할 시간이 없어 아령을 들고 다닌다는 이 격투가의 전기차는 말없이 운전대를 돌리고 출발합니다. 눈부신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저물어갑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