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실공사 부르는 초고령화
초고령화가 우리 삶을 실질적으로 타격하는 실상을 직시해야 한다. 다음 세대 얘기라고, 먼 나라 일이라고 치부할 단계는 일찌감치 지났다. 녹차 산지인 경남 하동의 농가가 최근 10년도 안 돼 1918가구(2012년 말)에서 1066가구(2021년 말)로 절반 가까이 사라져 업(業)이 궤멸하는 현실 같은 건 애써 외면할 수 있다. 역사가 유구하다고 한들 녹차 없이 못 사는 건 아닐 테니까.

하지만 부실 공사로 아파트가 무너질 지경에 이른 건 다른 문제다. 잇달아 수면 위로 부상한 ‘부실’이 우리 사회의 초고령화와 연관 있다고 주장하는 건 뜬금없는 비약이 결코 아니다.

젊은이 발길 끊긴 건설현장

문제가 된 GS건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은 최후까지 지켜야 할 안전이란 가치를 훼손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수사 고발, 인사 조치, 이권 카르텔 분쇄 같은 서슬 퍼런 대응에만 혈안이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저의를 의심받고, 이면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데 되레 방해되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엔 젊은이들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조사 결과 2000년 전체 근로자의 5.4%에 불과했던 60대 이상 비중이 지난해 24.6%로 치솟았다. 50대(35.0%)와 합치면 60%에 육박한다.

건설업만큼 근로자의 신체 기능이 품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업종이 있을까. 고령의 감리원들은 장시간 일하면 힘들어한다. 집중도가 떨어져 골조는 제대로 올라가는지, 빠진 철근은 없는지 확인조차 버거워하는 게 지금의 현장이다.

그렇다고 밀려오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한국인 선배’들이 보여줬던 책임감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굴지의 건설사는 이들을 관리·감독할 역량이라도 있다. 3·4군 건설사로 내려갈수록 소장들이 외국인들에게 휘둘려 일탈마저 모른 척하기 일쑤다. 지금은 우리 집을 떠난 조선족 시터가 “건설 일 하는 아들이 꼬치꼬치 따지는 한국인 소장을 쥐어팼더니 귀찮게 안 하더라”며 웃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체계적 이민정책 서둘러야

그러니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행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이민 정책을 이승만 정부의 농지 개혁에 비유한 걸 지지 정당이 다르다고 나르시시즘으로 깎아내려선 안 된다. 한 장관은 “이 시기를 놓치면 10년 뒤 후회할 것”이라며 실상을 정확히 파악했다. 이어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에게 인센티브를 주겠다”며 대안까지 제시했다.

한 장관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으면 “이민정책은 냉정히 국익을 위한 것”이란 그의 인식이 실패한 선례를 답습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면 된다. 외국인 근로자를 ‘손님(guest worker)’이라고 칭하며 그들 문화를 인정하기 주저하다 ‘완전한 실패’를 자인했던 독일의 예 같은 것 말이다.

더는 외국인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이슬람 이민자가 늘어나는 게 두렵다고 삼겹살 굽는 퍼포먼스로 냉엄한 현실을 외면하는 건 코미디에 비유해도 민망할 일이다.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민족주의 망상에 집착하다가는 한 장관의 호언처럼 “돌아오는 건 후회뿐”일 것이다. 단언컨대 무엇이 옳은 방안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에 나서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