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연구원이 인천 송도공장에서 위탁개발생산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삼성바이오로직스 연구원이 인천 송도공장에서 위탁개발생산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 3월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상대로 ‘직원을 그만 빼가라’며 영업비밀침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직원 개인이 아니라 회사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이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이직자는 2년 전 대비 두 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송도에 있는 한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업계 간 인력을 뺏고 뺏기는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며 “최근에는 임원급도 많이 이동하고 있어 기업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불붙은 바이오 인력 쟁탈전

"연봉 두 배" IT업계로…바이오 임원급 연구원도 떠난다
제약·바이오업계에는 역대급 인력 확보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고급 연구개발(R&D)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관련 산업이 성장하면서 인력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중소 바이오벤처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유례없는 돈가뭄에 자금이 바짝 마르다 보니 외부에서 사람을 데려오기는커녕 내부 인력을 뺏기고 있다. 연봉이 1.5~2배가량 높은 정보기술(IT) 기업이나 제약사로 이직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바이오업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인력은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숙련 전문인력이다. 석·박사 중에서도 특정 분야의 약을 개발할 정도로 과학적 전문성이 있고, 글로벌 기업 임상팀과 협력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선 ‘축적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한국 바이오산업이 본격적으로 개화한 지 20여 년밖에 되지 않다 보니 이런 인력은 태부족이다.

바이오기업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도 인력 문제를 키우는 요인이다. 한 바이오기업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국내 의사과학자는 대략 150명인데 그중 신약 R&D 경험이 있는 사람은 소수”라며 “임상인력 몸값이 워낙 높다 보니 2년 일하고 1년 쉬는 경우가 허다하고 인력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채용 직원 90%가 퇴사

인력 유출도 심각하다. 한국바이오협회의 ‘국내 바이오산업 인력실태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50여 개 바이오기업에서 최근 3년간 매년 채용한 인력의 90%가 퇴사했다. 퇴사자 중 경력직 비율은 3년 연속 70%에 달했다.

2020년만 해도 연구개발직 미충원 사유로 ‘다른 회사와의 치열한 인력 확보 경쟁 때문’을 꼽은 비율은 0%였다. 하지만 2년 뒤인 2022년 조사에서는 19.2%에 달했다.

경기 판교에 있는 한 바이오텍 대표는 “융합인재가 강조되면서 바이오 데이터를 분석할 줄 아는 핵심인력이 헬스케어 사업을 확대하는 네이버나 카카오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신약 개발기업의 연구소 인력은 4~5년 전 대비 30%가량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비상장사 바이오기업 대표는 “최근 임원급 박사 인력이 상장사로 자리를 옮겼다”며 “자금줄이 말라 연봉을 올려주지 못하다 보니 핵심인력이 떠난다고 해도 붙잡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 교육 인프라 필요”

업계에서는 정부의 세분화된 인력 양성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2년간 업계에 몸담은 기업 대표는 “정부가 바이오를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우면서도 인력 확보 등에선 아직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신약개발사 의료기기 진단 위탁생산(CMO) 등 분야별로 임상, 인허가, 제조, 마케팅 등의 인력을 세분화해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바이오 교육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이 스타트업이거나 중소기업인 바이오업계 특성상 내부 교육만으로 인재를 키워내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손지호 한국바이오협회 산업지원본부 상무는 “지방으로 갈수록 고급인재난이 심각하다”며 “젊은 인재들은 회사 내부 역량교육 부재로 퇴사하기도 하는 만큼 현금정책보단 이런 역량교육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