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 이야기예술인 서바이벌 '오늘도 주인공' 우승한 국악팀
양순영·방영희·이점순·김은혜 씨 "'누구 엄마'에서 자존감 높아져"
문체부 제작 지원…"시니어 세대에 다양한 기회의 장 열리길"
"연기하랴, 서울말 쓰랴 어려웠지만…우리 인생 봄날이 왔죠"
이야기 '할머니'라고 칭하기엔 낭랑한 목소리에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

이야기예술인(이야기 할머니) 기수를 따지며 "군대로 치면 '병장급'"이라고 '까르르~' 웃는 모습은 젊은이들과 다름없다.

이들은 지난 18일 tvN 스토리의 6070 세대 이야기 구연(口演) 서바이벌 '오늘도 주인공'에서 우승한 국악팀(팀명 '박수 세 번')의 양순영(70), 방영희, 이점순, 김은혜(이상 66) 씨.
최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 모인 네 사람은 코미디언 장동민을 팀장으로 원팀을 이뤘다.

파이널 무대에서 동화 '막내에게 남긴 유산'을 사물놀이, 판소리를 접목한 이야기극으로 꾸며 경쟁팀인 밴드·뮤지컬·넌버벌팀을 제쳤다.

웃음과 재미로 관객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우승팀에게는 활동지원금이 주어진다.

이들은 광주광역시, 경북 포항시, 경기도 화성시 등 전국구 멤버들. 지난 5월 녹화에 참여하며 처음 만났지만 궂은 날씨에 쳐진 머리를 매만져 줄 정도로 돈독한 사이가 됐다.

네 사람은 "연습하느라 가평에서 1박 2일 합숙도 했다"며 "촬영하러 고속버스 타고 오는 언니가 떡을 해오고, 함께 음식도 나눠 먹으며 정말 가까워졌다.

살 만큼 살며 다름을 인정하는 나이여서 서로 이해하고 배역도 양보하며 팀워크가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연기하랴, 서울말 쓰랴 어려웠지만…우리 인생 봄날이 왔죠"
'오늘도 주인공'은 유아들에게 선현 미담과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6070 이야기예술인'(만 56~74세)들이 구연 실력을 겨룬 프로그램이다.

이야기예술인 사업 주체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시니어 세대의 창작 예술 기회를 확대하고 이야기 구연을 K-전통문화 콘텐츠로 육성하고자 제작 지원했다.

네 사람의 공통분모는 주부로 살며 '누구 엄마'로 불리다가 자녀들이 성장하고서 이야기할머니로 나섰다는 점. 방송 출연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실력을 검증받고 싶다는 도전 의지도 한마음이었다.

김은혜 씨는 50대 중반 동화 구연 자격증을 따 어린이집 등지에서 봉사하다가 이야기예술인 13기에 뽑혔다.

김씨는 "그 후 인생이 바뀌었다"며 "실력 테스트도 받아보고, 나 자신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출연했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온 양순영(9기) 씨는 "문화센터에서 시낭송을 하다가 이야기할머니를 알게 됐다"며 "선현 미담을 들려주며 아이들과 교감하고, 인성 함양에도 일조하는 일이라 즐거웠다.

나도 이야기를 외워야 해 머리가 늘 깨어있다"고 했다.

이야기예술인 7기로 최고참인 방영희 씨는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고 1년간 판소리를 배운 재능꾼이다.

시낭송·동화 구연 대회 대상 수상 이력이 있고, 이번 방송에서도 연예인 팀장 4명의 '올 캐스팅'을 받았다.

방씨는 "'오늘도 주인공' 공고를 보니 '이야기예술인 누구나'라고 돼 있었다"며 "나는 '누구나'에 해당하니 도전해서 승리를 한번 해보기로 했다"며 웃었다.

포항에 사는 이점순 씨의 젊은 날 꿈은 교사였다.

꿈을 이루지 못한 대신 30년간 교회 주일 학교 교사를 하며 노인대학 봉사도 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뒤 이야기예술인 9기로 활동했다.

이씨는 "남편과 지인이 옆구리를 찔러 방송에 도전했다"며 "오디션 장소에 대단한 분들이 많아 처음엔 무척 긴장했다"고 떠올렸다.

"연기하랴, 서울말 쓰랴 어려웠지만…우리 인생 봄날이 왔죠"
살아온 과정이 닮은 이들이 팀으로 호흡을 맞추는 일은 순조로웠다.

팀을 이끈 장동민의 역할도 한몫했다.

그러나 난생처음 연기를 하고 무대 동선을 맞추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김은혜 씨는 "A4 용지 3장의 대사를 외우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동선을 맞추며 자연스럽게 연기하려니 어려웠다"고 했다.

극의 내레이터인 화자(話者)를 맡은 이점순 씨는 "경상도 억양과 발음 때문에 엄청 신경을 썼다"고 웃음 지었다.

양순영 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 기차로 서울에 와 촬영을 마치고 심야 버스를 타고 가는 일정이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강에서 예쁜 물안개가 피어올랐다"며 "이걸 선택했기에 본 풍경이었다.

그때 '뭐든지 해봐야 해, 순영이 넌 대단해'라고 되뇌었다"고 떠올렸다.

남편부터 자녀, 사위, 며느리까지 가족들 응원을 한껏 받은 이들은 이야기예술인을 통해 새로운 삶을 알게 됐고,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방영희 씨는 "내 인생의 봄이 영문도 모르게 지나갔는데, 촬영하며 '이제야 인생의 봄이 왔구나'라고 느꼈다"며 "프로그램 제목처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란 걸 느낀 귀한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양순영 씨는 "'자네는 할 수 있다'고 응원해준 남편이 무척 고마웠다"며 "건강이 허락하면 뭐든지 도전할 수 있단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남편과 촬영장에 늘 함께 다닌 이점순 씨는 "가정만 꾸려온 나도 사회에 환원하는 존재란 걸 느꼈다"고 덧붙였다.

"연기하랴, 서울말 쓰랴 어려웠지만…우리 인생 봄날이 왔죠"
이들은 이야기예술인을 위한 무대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시니어 세대에게 다양한 기회의 장으로 열리길 바랐다.

문체부는 최종 공연의 이야기극을 각색해 10월부터 전국 3개 내외 도시에서 약 10회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이야기예술인 선발은 해마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1기 30명으로 출발해 올해는 3천여 명이 8천600여 개 유아교육기관에서 활동 중이다.

주 2~3회씩 평균 약 85회(지난해 기준) 수업한다.

1회 활동비는 4만원이지만 올해 초 경쟁률은 6.7대1에 달했다.

김은혜 씨는 "이야기예술인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며 "시니어들도 숨겨진 '끼'가 많은데, 열심히 살아온 세대에게 자기 인생을 사는 기회가 더 주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