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안 폐쇄회로TV(CCTV)를 검은색 비닐봉지를 씌워 가렸다면 영업방해일까, 정당한 행위일까.’

법원은 2심까지 이를 영업방해 행위로 봤으나 대법원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최종 판단하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재판부는 보안 및 화재 감시 용도의 CCTV를 설치하는 경우라도 ‘근로자 감시 효과’가 있다면 근로자의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에서 CCTV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다룬 첫 판결이다. 이번 결정으로 앞으로 기업이 주요 업무 장소나 동선에 CCTV를 설치하려면 근로자의 사전 동의를 반드시 구해야 하게 됐다. 법정 근로시간 단축 및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CCTV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산업 현장에서 일대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법 "노조가 CCTV 가려도 된다"…화재·도난 어쩌나

1·2심 유죄, 상고심 뒤집어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전국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회 노조원 3명에게 유죄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회사 측의 CCTV 설치·운영은 업무방해죄의 보호 대상”이라면서도 “피고들의 행위는 기본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타타대우상용차는 2015년 10월 군산공장에 보안 및 화재 감시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조 측과 합의하는 데 실패했다. 회사는 노조 동의 없이 그해 11월 CCTV 시험 가동을 시작하고 회사 소식지에 이 사실을 공지했다. 피고들은 “사전 동의가 없었다”며 수차례 CCTV 51대에 검은색 비닐봉지를 씌웠다. 검찰은 업무방해죄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1·2심 재판부는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각각 벌금 70만원을 매겼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전체 CCTV 중 주요 시설물에 설치된 16대와 출입구에 설치된 3대에 비닐봉지를 씌운 행위는 정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근로자 다수의 근로 현장과 출퇴근 장면을 찍는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CCTV 설치 공사를 시작할 당시 근로자들의 동의가 없었고, 회사가 주간만이라도 CCTV를 대체할 방법을 찾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사업장에 CCTV를 설치할 때는 근로자들과 정당한 절차를 거쳐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졌다”며 “그렇지 않은 경우엔 근로자가 CCTV 촬영을 막아도 형사상 죄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불법 쟁의 입증 더 어려워졌다”

대법원 판결 이후 기업들은 “근로자들의 불법 쟁의행위를 입증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토로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공동 불법 행위를 벌인 노조원들의 책임 비율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 3조 내용과 비슷한 판결을 내놓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산업 현장에선 근로자들이 복면을 쓰거나 CCTV를 가린 채 기물을 파괴하는 일이 적잖게 벌어지고 있다”며 “법원이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판결을 낸 데 이어 증거 확보마저 어렵게 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기업들은 CCTV와 위치 추적 장치 설치 등이 개인정보 침해인지를 두고 근로자들과 지속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반도체 전기검사업체 테스트테크는 근로자 동의 없이 회사 건물에 CCTV 40여 대를 설치했다가 지난달 31일 노조에 고소당했다. 한 화학업체는 최근 생산 현장의 안전 의무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안전모에 위치정보시스템(GPS)을 부착하려 했다가 노조 반대로 무산됐다.

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로제, 중대재해법 등 노동 규제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개인정보 수집을 반대하는 근로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근로자가 법정 근로시간을 1분만 넘겨도 민감해하면서 임금 체불로 회사를 고소하는 일도 벌어지는 상황”이라며 “회사도 근로자들이 제대로 일하는지 살펴볼 최소한의 권한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경진/곽용희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