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5년째 외무상 아닌 대사가 참석…고위급 접촉 등 외교력에 한계
의장국 인니의 '실망감' 반영 가능성…중·러 영향도 주목
ARF서 입지 좁아진 北…의장성명도 북한에 냉랭해지나
남북한 외교전의 대표 장소로 활용되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북한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양상이다.

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안보 협의체로, 아세안 10개국에 남·북·미·일·중·러 등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과 주변국들이 모두 참여한다.

북한은 지난 2000년 ARF에 공식 가입한 뒤 남북·북미 관계 흐름에 따라 회의에 참석과 불참을 반복하면서 자국 입장을 국제사회에 설파하는 무대로 삼았다.

남측으로서도 북한의 면전에서 정부 입장을 강조하는 흔치않은 기회였다.

2008년 싱가포르 ARF에서 치열하게 펼쳐졌던 남북 외교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남측은 의장성명에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을 담으려 했고, 북측은 '10·4 남북정상선언'을 반영하려했다.

이에 의장국인 싱가포르는 두 사항을 모두 반영한 의장성명을 공개했다가 남북 모두가 격하게 항의하자 결국 두 사항을 모두 삭제한 '의장성명 수정안'을 발표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바 있다.

북한은 2010년대 들어선 꾸준히 외무상을 참석시키며 더욱 활발하게 활동했다.

2016년엔 리용호 당시 외무상이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고, 2017년에는 북한 대표단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청산되지 않은 한 핵·미사일 협상은 없다'는 내용의 리 외무상의 ARF 발언 전문을 취재진에 배포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북미 화해 분위기를 반영한 듯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리 외무상에게 다가가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고립 노선이 뚜렷해지고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까지 겹치면서 ARF회의에서 북한의 존재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북한은 2019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으로 외무상 대신 ARF 회의가 열리는 나라에 주재하는 대사나 주아세안대표부 대사를 수석대표로 보냈다.

16일 외교가에 따르면 올해도 북한 안광일 주아세안대표부 대사가 수석대표로서 나름 현지에서 외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의 고위급 인사를 접촉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 대사는 13일 인도네시아가 주최한 ARF 각국 대표 환영 리셉션에서도 장관급만 입장 가능한 구역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정부는 안 대사의 외교 스타일이 그리 적극적이진 않아 아세안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대사는 ARF 회의장 입장 전후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도 일절 답하지 않았다.

ARF서 입지 좁아진 北…의장성명도 북한에 냉랭해지나
북한이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개최 기간인 12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린 것도 아세안에서 인심을 잃은 결정적인 이유다.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13일 북한의 ICBM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신속하게 발표했다.

아세안 10개국 가운데는 북한과 오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성명이다.

ARF를 포함한 일련의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의 의장국이 인도네시아로 동일하다는 점에서 ARF 의장성명에도 냉랭한 대북 여론이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북한 최선희 외무상의 참석을 위해 공을 들였지만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도발까지 겹쳤으니 실망감이 상당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을 통해 노골적으로 북한을 옹호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도 ARF 회원국인 만큼 중·러의 목소리도 의장성명에 반영될 수 있다.

지난해 ARF 의장국인 캄보디아는 의장성명에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달성에 대한 지지와 함께 '의미 있는 대화의 재개를 저해할 수 있는 모든 행동 자제'라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이는 북한의 도발 중단과 함께 한미를 향해서도 북한이 민감해하는 연합훈련 등을 자제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