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난·경제위기 속 79세 오수용 '경제 구원투수'로 롤백
노동당 정치국으로 돌아온 김영철, 대남업무 다시 맡나
2018년과 2019년 북미협상과 남북정상회담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남쪽에도 익숙한 김영철 전 노동당 대남비서가 통일전선부 고문 직책으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복귀해 거취가 주목된다.

김영철은 2021년 열린 제8차 당대회에서 대남비서 자리가 없어지면서 통일전선부장으로 사실상 강등됐다.

이어 2022년 6월 당 제8기 5차 전원회의에서는 통일전선부장 자리마저 후배인 리선권에게 넘겨줬고 같은 해 9월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상임위원회 위원 자리마저 내놓으며 사실상 '야인'이 됐다.

2018년 남북미 사이의 대화가 이어지며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릴 때만 해도 김영철은 최고지도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최측근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김영철의 정치적 위상도 급전직하했고 일각에서는 '처형설'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김영철이 다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복귀하면서 통전부 고문으로 역할을 하게 됐지만, 다시 대남업무를 총괄적으로 책임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일단 18일 열린 당 전원회의에서는 정치국 후보위원으로만 선출됐고 노동신문에서는 통전부 고문으로 그의 직함을 명시했다.

따라서 통일전선부장은 리선권이 맡고 있고 대남비서 자리는 없어진 것으로 보여 당장 자리를 맡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이력으로 미뤄볼 때 대남비서 자리가 부활해 다시 맡거나 후배인 리선권을 밀어내고 통전부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결국 대남업무 현장으로 복귀할 가능성에 눈길이 모아진다.

그는 1990년부터 남북고위급회담의 대표로 참석했고 2006∼2007년에는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의 북측 단장으로 활동했다.

특히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의전ㆍ경호 관련 실무자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지냈고, 2008년 11월에는 남측의 육로출입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12.1 조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고위급회담 때 숙소인 신라호텔에 가라오케가 차려지고 당시 북측 수석대표였던 연형묵 총리는 '열일곱살이예요' 등을 불러 주변을 놀라게 했는데 김영철은 그 자리에서 김일성을 찬양하는 '백두산'이라는 시를 읊어 분위기를 깰 정도로 '원칙주의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김영철은 통전부 고문으로 두고 대남 강경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맡길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한다.

김계관 전 외무성 제1부상이 일선에서 물러나 고문을 맡아 북미정상회담 과정에서 악역을 도맡아 강경한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김영철이 현재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확성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당 정치국으로 돌아온 김영철, 대남업무 다시 맡나
이번 당 전원회의에서는 오수용의 복귀도 눈에 띈다.

작년 6월 열린 당 전원회의에서 당 비서와 경제부장에서 해임된 그는 9월에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이라는 명예직을 맡으며 경제일선에서 물러났다.

사실 오수용은 전문경제관료라기보다는 전자자동화공업위원회에서 잔뼈가 굵은 정보기술(IT)산업 전문가다.

그는 김정일 정권이 출범하면서 전자공업상을 지내다 2009년 북한의 경제실무를 담당하는 내각에서 부총리를 역임했고 2010년 함경북도 당 책임비서를 거쳐 2014년 당 비서 자리에 올랐다.

그는 2021년 당 비서 겸 경제부장이 되면서 북한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사령탑을 지내며 좋은 평가를 받았고 작년 6월에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이번에 다시 롤백하게 됐다.

촘촘한 대북제재 와중에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다시 식량난을 걱정하고 농업에서 증산을 독려할 정도로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올해 79세인 오수용이 구원투수로서 노익장을 발휘해야 하는 국면이 된 셈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