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분양하려면 수백억원을 내라’는 식의 과도한 기부채납(공공기여) 요구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별로 제각각인 기부채납 관련 규정을 재정비하기로 해서다. 그동안 공공기여는 통일된 규정이 없어 재개발 사업 면적의 30%까지 요구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정비사업을 가로막는 걸림돌 중 하나로 지적돼 왔다. 업계에선 정부가 공공기여 관련 규정을 정비해 과다한 요구가 줄어들면 지지부진한 정비사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없는 공공기여 불가’로 개정

"땅 30% 내놔라"…이런 기부채납 사라진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도시·주거환경 정비계획 수립 지침’ 개정을 추진 중이다. 지구단위계획 수립 지침을 준용해 공공기여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방안을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엔 또 ‘시장·군수 등이 정비 계획 수립 때 해당 정비 사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거나 과도한 정비 시설, 기반 시설의 기부채납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명시된다.

기부채납은 정비사업자 등이 사업 진행 과정에서 도로, 공원, 사회기반시설(SOC) 등을 구축해 국가나 지자체에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표면적으로는 정비사업자가 기부하는 형태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어 공공연하게 과도한 기여를 요구해 왔다.

지자체가 용적률 완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가로 정비사업자에게 주차장, 도로, 공원 등을 제공받아 인프라를 확충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이렇게 과도한 공공기여는 사업성을 악화시키고, 결국 정비사업 추진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과도한 공공기여가 도심 주택 공급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현행 주택법 등 관련법에 ‘사업 인가 때 과도한 기부채납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선언적인 수준에 그쳐 소규모 지자체를 중심으로 여전히 정비사업자에게 과도한 공공기여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 구리시 교문동 삼용주택 재건축정비사업은 도로 공공기여 면적 문제로 구리시와 갈등을 겪고 있다. 구리시는 지난해 삼용주택 소규모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이 제출한 사업시행계획을 심의하며 조합이 공공기여하겠다고 한 도로보다 넓은 면적을 요구했다. 이에 조합 측은 “요구를 모두 수용하면 공공기여율이 관계법이 정한 상한을 넘어 13.4%가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같은 정비구역 내에서도 지구별로 공공기여 부담률이 다르게 적용되는 형평성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공평도시환경정비구역의 부지 대비 공공기여 비율은 22.9~35.5%로 제각각이다.

○지지부진한 정비사업 속도 낼 듯

국토부가 관련 법령 재정비에 나선 것도 이처럼 기부채납 관련 내용이 산재해 있는 데다 소규모 지자체의 경우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과도한 공공기여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관련 조항을 한데 합쳐 명시하면 과도한 공공기여 요구가 근절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비사업 때 기반 시설을 정부나 지자체에 공공기여해야 한다는 공공성의 원칙은 유지한다”면서도 “과도한 공공기여에 따른 사업성 저하를 막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공공기여 완화에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 개정안 추진으로 사업지 땅값의 두 배를 웃도는 과도한 요구가 완화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중견 건설회사 관계자는 “사업 인허가를 위해 마지못해 요구 조건을 들어줘야 하지만 고금리에 원자재 가격·인건비 급등으로 유동성 우려까지 나오는 마당에 과도한 공공기여 규모가 사업에 큰 장애가 됐다”고 말했다.

설계업체 관계자도 “제도가 정비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현장에서 정말 실효성이 있을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공공기여 수준을 사업자가 정할 수 있으면 사업성 예측이 쉬워지는 등 사업자에게 여러 측면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