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불평등 심화"…신간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 "인간은 숨으로 연결된 존재"
"나는 경계 지어진 생물로서 외부로부터 온전하게 봉인되어 있는 독립자가 아니다.

나는 다른 이들의 폐를 통과하여 순환해온 공기를 들이마시는 공유의 세계 속에서 다시 내 숨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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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주디스 버틀러의 신간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원제: What World Is This?)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혼란에 빠진 이 세계를 분석한 책이다.

그는 국경과 면역체계를 넘나들며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역설적으로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팬데믹은 자본의 민낯을 드러냈다.

저개발국, 유색인종, 저소득층 등이 가장 먼저 코로나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점에서다.

그들은 재택근무도 할 수 없었고, 백신도 맞지 못했다.

충분한 의료 체계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팬데믹이라는 상황 속에서 생명은 계급과 인종으로 나뉘어 노골적으로 차별받았다.

"어떤 삶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죽음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다른 삶들을 보호하는 것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아니 비용을 치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 "인간은 숨으로 연결된 존재"
현상학을 탐구한 독일 철학자 막스 셸러에 따르면 어떤 사건에 의해 세계의 특질이 드러나는데, 불평등이라는 세계의 특질이 팬데믹이라는 사건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이 버틀러의 입장이다.

그러나 불평등이라는 잣대로 인간의 삶을 구획 지을 순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영화 '설국열차'의 철도 칸처럼 부자와 빈자를 인위적으로 영구히 나눌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공기로 숨을 쉬는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버틀러는 "들숨과 날숨이라는 호흡이 가진 두 가지 차원과 관련된 위험성에서도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나아가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의 '상호 엮임' 개념을 끌어와 "이 행성에 함께 사는 유기체로서 우리는 서로 엮여 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구성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상호 엮임'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도 성립한다.

무차별적인 개발 과정에서 자연은 훼손됐고, 그 결과 자연은 팬데믹이라는 시련을 인간에게 안겨주었다.

저자는 "너무도 쉽게 생명을, 생명체들을, 그리고 서식 및 생활환경을 폐기해버리는 권력들에 맞서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팬데믹을 전 지구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불평등에 맞서는 것을 의미한다.

팬데믹은 우리가 서로에게 그리고 지구에 대해 가지는 책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전 지구적 감각을 고양하는 동시에 또한 인종적, 경제적 불평등을 부각했고, 또 심화했다.

"
창비. 김응산 옮김. 22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