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4월 27일 집코노미TV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라이브 영상의 텍스트 버전입니다.
전세사기 대책 제대로 짚어보기 [전형진의 집코노미 타임즈]
▶전형진 기자
정부가 전세사기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사실 이런 대책이 나오지 않는 사회여야 좋은 사회일 텐데요. 일단 요약을 하자면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지원합니다. 법은 5월 중에 제정, 시행할 예정이고, 2년 한시 특별법입니다. 참고로 특별법은 모든 법의 상위에 있는 법입니다. 다른 법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특별법이 우선한다는 개념입니다.

이 법에서 규정하는 피해자로 인정된다면 여러 가지 지원이 뒤따르는데요. 일단 세입자가 살고있는 임차주택을 낙찰받을 때 특례가 있고, 원한다면 임차인이 아니라 LH가 매입한 뒤 다시 임대로 줍니다. 생계비 등에 대한 융자도 지원합니다. 여기까진 그동안 나왔던 이야기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세사기 대책 제대로 짚어보기 [전형진의 집코노미 타임즈]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지원하느냐죠. 이번 사태에 대한 구제는 특별법에서 규정한 피해자들에 대해서만 이뤄지는데, 그 조건이 이렇게 6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만 충족하는 게 아니라 모두 충족해야 하는 조건입니다.

첫 번째는 확정일자를 받고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이어야 합니다. 대항력을 갖췄다는 건 나중에 경매가 진행될 때 선순위든 후순위든 번호표를 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사 가면 전입신고 하라, 확정일자 받으라고 강조하는 게 이런 이유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경매나 공매가 진행돼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임차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상황이 경매입니다. 집주인이 망한 것보다 집이 경매로 넘어갈 때 더 두려워하죠. 주인이 바뀌고 나면 살던 집을 비워줘야 하니까요.

물론 여기서 선순위 임차인이라면 경매가 그리 무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선순위라는 건 다른 채권자들보다 낙찰대금에 대한 배당 우선순위가 있다는 의미죠. 그리고 낙찰자 입장에선 집을 얼마나 싸게 낙찰받든 세입자의 보증금을 보전해줘야 합니다. 보증금보다 낮은 가격에 낙찰을 받더라도 말이죠. 그런데 후순위 임차인이라면 배당에서 밀려 보증금을 보전받지 못하고 집을 비워줘야 할 수 있기 때문에 경매로 넘어가는 상황이 두려운 것입니다.

정부가 내건 세 번째 조건은 서민주택입니다. 5월 중 하위법령을 만든다는 계획이기 때문에 아직 세부 요건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세사기 피해가 대부분 빌라에 집중돼 있는 점을 고려하면 보증금이든 시세든 3억 전후의 가격과 국민주택규모(85㎡) 이하 면적대로 정해질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전세사기 대책 제대로 짚어보기 [전형진의 집코노미 타임즈]
네 번째 조건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요.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입니다. 단순한 깡통전세나 역전세로 인한 피해까지 구제하지는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시중에 알려지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 가운데는 이 같은 깡통전세나 역전세 사례도 많은 편이죠. 정부는 처음부터 완전히 설계된, 사기의 의도를 갖고 있는 사건들의 피해자에 대해서만 구제하겠다고 못 박은 셈입니다. 예를 들자면 빌라왕 사건이 여기 해당합니다.

물론 사기는 그것을 입증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사기를 친 게 아니라고 변호하는 것보다 사기를 당했다고 입증하는 게 더 힘듭니다. 문제는 사기 여부에 대한 판단을 누가 내리느냐일 것 같습니다.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면 피해자를 규정하고 구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정부기관이 판단한다면 적정성이나 형평성 등에 대한 논란이 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모로 예민하고 애매한 문제가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섯 번째는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요. 사실 사기든 단순한 갭투자 실패든 피해자는 다수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한 채당 수익이 크지 않아 필연적으로 여러 채를 굴리는 구조이기 때문이죠. 다만 피해자가 다수여도 사기의 의도기 입증되지 않는다면 특별법에 따른 구제 대상엔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조건은 보증금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가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4, 5번 조건이 충족됐다면 자동으로 부합할 조건으로 보입니다. 사기꾼이든 거액의 깡통전세를 맞은 갭투자자든, 다수의 피해자를 낸 상황에서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있기는 할까요?
전세사기 대책 제대로 짚어보기 [전형진의 집코노미 타임즈]
이제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선 임차인에게 경매를 유예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는 권한을 주기로 했습니다. 원래는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들만 갖는 권리죠. 물론 임차인에게 이 같은 권한을 부여하는 건 특별법에 따른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경우에 한정됩니다.

그리고 우선매수권이 주어집니다. 경매를 통해 낙찰자가 결정되더라도 세입자가 이보다 우선해 해당 주택의 소유권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조항과 관련해선 낙찰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논란이 있기도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낙찰자의 입찰가와 같은 가격으로 우선매수권을 행사한다는 조건이 걸렸습니다. 적어도 낙찰자보다 싼 가격에 주택을 가져가게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죠. 다만 경매는 관할 법원에 방문해 입찰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응찰자들 입장에선 하루를 허탕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한 가지 더 나옵니다. 임차인이 희망할 경우 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할 수 있는데요. 쉽게 말하자면 본인이 소유권을 가져가고 싶지 않은 경우 LH가 대신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낙찰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낙찰받은 집을 같은 세입자에게 임대해줍니다. 매입임대와 비슷한 개념이죠.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피해자들의 보증금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없다고 밝혔는데요. 선순위 임차인이 LH에게 우선매수권을 양도하고, LH가 낙찰받은 집에 다시 세입자로 들어간다면 사실상 보증금을 전액 보전받게 됩니다. 처음부터 선순위였으니 낙찰대금에 대한 배당을 받거나 우선매수권 양도 과정에서 매각대금을 받게 되니까요.
전세사기 대책 제대로 짚어보기 [전형진의 집코노미 타임즈]
조세채권 안분은 용어가 다소 어려운데요. 여러 채권 가운데 채권은 언제나 1등입니다. 집주인에게 은행 빚도 있고 밀린 세금도 있다면 나중에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나라부터 돈을 회수해간다는 의미죠.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이 많을수록 다른 채권자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여기서 채권자는 은행뿐 아니라 세입자도 해당됩니다. 전세보증금도 채권이니까요.

그런데 집주인의 체납 세금은 모든 집에 채권으로 걸려 있습니다. 만약 놀부에게 집이 10채 있고 세금도 10억이 밀렸다고 해보죠. 그럼 10채의 집에 모두 10억의 채권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어느 집이든 먼저 낙찰되는 집에서 나라가 10억을 회수해가는 구조죠. 회수가 끝나면 다른 집에 걸려 있는 채권이 풀립니다.

이 같은 구조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다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기는 더욱 어렵겠죠. 그래서 나라가 가진 채권을 여러 채의 집에 각각 나누겠다는 게 바로 조세채권 안분의 개념입니다. 놀부의 집 10채에 모두 10억씩 채권이 걸리는 게 아니라, 1채에 1억씩 나눠서 걸겠다는 의미죠. 물론 특별법에 따른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해당할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마지막 지원책은 비용와 관련한 것입니다. 경락자금 대출을 저리로 지원하고 해당 주택을 취득할 때의 세금 또한 면제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이 밖에도 생계비 지원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전세사기 대책 제대로 짚어보기 [전형진의 집코노미 타임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 지점인 것 같습니다. 우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전세사기인가, 이것부터 정해야겠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 봇물처럼 터지는 모든 전세 관련 이야기들이 전세사기는 아닙니다. 정부에서 피해자 규정에 여러 가지 조건을 걸어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깡통전세나 역전세까지 전세사기로 규정하기엔 다소 섣부른 면이 있습니다. 투자실패가 곧 사기는 아니니까요. 물론 일부는 미필적 고의가 포함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전세 집주인이 잠재적 사기꾼으로 몰리는 데 반감을 표하는 임대인들도 많습니다. 전세사기 관련 보도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거의 그렇게 형성되고 있으니까요.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 세금을 들여 구제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적정성 논란도 불가피합니다. 최근 서울시에서 반지하주택 매입 대책을 내놓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요. 내가 낸 세금이 사회복지의 측면에서 쓰여야 하는 건 맞지만, 이런 일이 더는 벌어지지 않게 사회적 장치를 만드는 데 집중돼야 한다는 것이죠. 단순히 누군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구제해야 한다는 건 누군가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으니까요. 특히 사기의 경우 형사적인 성격도 있지만 민사적인 성격도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합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이상 정부 입장에서도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긴 했습니다. 그러나 미봉책에 그칠 확률이 높습니다. 대책이 더 복잡하고 촘촘하더라도 투자나 사기는 거기에 맞춰 진화할 테니까요.

중요한 건 정보의 비대칭을 풀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앱을 만들어서 빌라 시세를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올바른 임대차정보도 보여주겠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이 같은 부동산정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앱조차 설치하지 않을 확률이 높죠. 예컨대 표준임대차계약서에 해당 물건에 대한 매매가격이나 공시가격을 병기해 임대차보증금이 적정 수준인지 확인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음주에도 알찬 기사 해설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