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서울에 사는 무주택자 김모씨(49)는 최근 걱정이 많아졌다. 서울 곳곳에서 집값이 바닥을 치고 오르고 있단 얘기를 들어서다. 김씨는 "이미 몇 년 전 집값이 치솟을 때 집을 마련할 기회를 한 번 놓쳤다"며 "집값이 저점이 오면 '내 집 마련'을 하려고 했는데 가격이 다시 반등하는 것을 보니 '집 살 시기를 또 놓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서울 곳곳에서 집값이 저점을 찍고 반등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일각에선 강남 3구 등 상급지를 중심으로 상승 초입에 들어섰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시장에 기대 심리가 확산하면서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한 무주택자들 마음도 뒤숭숭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시장을 낙관하기엔 시기상조라고 분석한다. 금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인데다 거래량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디에이치아너힐즈’ 전용 76㎡는 지난달 6일 24억원에 손바뀜했다. 올해 첫 거래다. 지난해 12월에 거래된 마지막 거래 22억원보다 2억원 뛰었다. 대치동 '은마' 전용 84㎡도 지난 3일 22억8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올해 들어 가장 낮았던 가격인 21억3000만원(2월)보다 1억5000만원 상승했다.

송파구에 있는 '트리지움' 전용 114㎡는 이달 23억6000만원에 매매 계약을 맺었는데 올해 최저가 22억5000만원보다 1억1000만원 상승했고, 같은 구 잠실동에 있는 '잠실엘스' 전용 84㎡는 지난 3일 21억5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으면서 지난 1월 기록한 최저가 18억7000만원보다 2억8000만원 올랐다.

강동구에서도 반등 거래가 나왔다. 고덕동 대장 아파트 '고덕그라시움' 전용 84㎡는 지난 4일 14억9500만원에 팔렸는데 올해 신저가인 14억5000만원(1월)보다는 4500만원, 지난해 11월 거래된 최저가 13억9000만원보다는 1억500만원 더 올랐다.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공인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물 안내문이 붙여있다. 사진=뉴스1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공인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물 안내문이 붙여있다. 사진=뉴스1
이런 흐름은 강북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마포구 신수동 '신촌숲아이파크' 전용 84㎡는 지난 4일 16억원에 손바뀜했다. 지난달 15일 거래된 15억원보다 1억원 상승했다. 은평구 수색동 'DMC롯데캐슬더퍼스트' 전용 84㎡도 지난달 9억8000만원에 거래돼 1월 기록한 8억8500만원보다 9500만원 올랐다.

성북구 장위동 '래미안장위퍼스트하이' 전용 84㎡도 지난 4일 9억4300만원에 거래돼 올해 1월 기록한 8억5000만원보다 9700만원 반등했다. 노원구 월계동 '월계센트럴아이파크' 전용 84㎡도 지난 1일 8억6000만원에 손바뀜해 지난해 최저가 7억5000만원보다 1억1000만원 상승했다.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요즘 들어 문의하는 실수요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언제 이렇게 가격이 올랐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급매물 가격 수준으로 집을 사기엔 늦었다. 집값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저점이라고 생각한 실수요자들이 몰려 급매물이 빠르게 소화됐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도 집값이 반등 추세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강남 3구를 중심으로 집값이 빠르게 반등하고 있는데 이러다 다른 지역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번지는 것 아니냐"고 했고 또 다른 이용자는 "바닥에 매수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닥은커녕 또 집 살 기회를 놓칠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이러다 또 집 못 사는 거 아닌가요?"…무주택자 '좌불안석'
다만 시장에서는 집값 '바닥'에 대해 신중한 모습이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중개업을 해온 B 대표는 "최근 6~7년간 집값이 치솟았는데 이제 1~2년 내렸다고 바닥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며 "조금 급하게 집값이 내리면서 실수요자들이 착시 현상을 겪는 것 같다. 아직 바닥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바닥론'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소폭 상승하는 것은 주식으로 따지면 급락에 따른 반발 매수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며 "매수를 끌어낸 요인이 정책, 금리 정도로 보는데 정부 정책은 이제 상수가 됐지만, 금리는 여전히 변수다. 아직 집값 바닥을 논하긴 이르다"고 설명했다.

한편 작년 하반기 이후 부진했던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가 상승 전환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전월 대비 0.81% 상승했다. 작년 6월(0.23%) 이후 7개월 만에 처음이다. 실거래가지수는 실제 거래된 아파트 가격 변동만 집계한다.

서울 5개 권역 가운데 노원, 도봉, 강북구가 있는 동북권이 1.69% 올라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이어 마포·은평·서대문구 등이 있는 서북권이 1.61% 올라 뒤를 이었고, 강남4구가 있는 동남권은 1.15% 올랐다. 다만 도심권(-1.34%)과 서남권(-0.2%)은 1월에도 실거래가가 내렸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