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동 칼럼] 분노 조절이 필요한 대일외교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전후 처리 과정에서 운이 매우 좋았다. 전쟁 배상을 하느라 나라가 거덜나기는커녕 부국이 됐다. 종전 6년 만인 1951년 9월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미국 등 48개 연합국은 조약상 특별규정이 있는 경우를 빼고는 대일 배상청구권을 포기했다. 배상도 일본의 생산품과 용역서비스로 하도록 해 전후 일본의 경제적 재건의 길을 열어줬다. 이 조약의 후속으로 이뤄진 일본과 동아시아 피해국 간의 양자 협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1950년대 이후 필리핀 베트남 등 9개국에 4249억2880만엔을 대부분 현물과 용역으로 배상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한국에 준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중 3억달러도 생산물과 용역으로 제공했다.

전쟁의 가해국을 최대 수혜국으로 만든 것은 냉전이었다. 미·소 냉전이 격화하자 대일 협상을 주도한 미국은 일본을 공산권 봉쇄의 교두보로 삼았다. 그 대신 배상 조건을 대폭 완화하고 일본의 경제적 성장을 유도했다. 강화조약 서명 당일 체결한 미·일 안보조약은 사태의 반전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반면 한국은 연합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조약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분단과 6·25전쟁을 겪은 뒤 식민지 지배에 사죄도 반성도 하지 않은 일본과 성에 차지 않는 청구권 협정을 맺었다.

이것이 불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 현대사다. 일본은 한·일 간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식민지배에 대해서는 무라야마, 오부치 등 역대 총리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밝혔지만 식민지배 자체는 합법적이었다는 게 일본 정부의 인식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면서도 ‘추가 사죄’는 불가하다고 못 박았고 현재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도 같은 입장이다. 이런 일본을 상대로 경쟁하고 협력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처지다.

지난 6일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에 대해 야당과 관련 단체 등이 “대일 굴욕·굴종외교”라며 연일 거센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국가의 자존심을 짓밟고 피해자의 상처를 두 번 헤집는 ‘계묘늑약’”이라고 했다.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은 정부 해법을 규탄하는 비상시국선언도 발표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비판하면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무조건 비난만 하지 말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 아닌가. 대안도 없이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죽창가’를 높이 부르며 한·일 관계를 수교 이후 최악으로 몰고간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을 건가. 우리 뜻대로 안 되면 친일이고 굴종인가. 우리 정부가 아니라 일본을 향해 사죄와 배상 등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촉구해야 하지 않나. 1998년 일본을 국빈 방문해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래지향적 실용정신은 왜 잇지 못하나.

신냉전 구도 속에서 북한의 핵 위협이 가중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지만 앞으로도 한·일 관계가 순탄치는 않을 것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등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원수처럼 지낼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어떤 말로 포장해도 정부의 이번 해법이 흡족하지 않지만 국내법과 국제법, 경제·안보 현실을 모두 고려한 고육책임은 분명하다. 분노와 성토보다 국가적 대응 역량을 결집할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