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누가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있나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갑자기 철(鐵)의 민주투사가 된 듯하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불거진 이후 약방의 감초처럼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산다.

의도는 뻔하다. 민주주의는 위장술일 뿐이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종착점은 어김없이 이 대표 사법리스크 방어다. 패턴은 늘 같다.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내세우고, 이를 윤석열 정권의 ‘검찰 독재’로 연결시켜 민주주의 퇴행 근거로 삼고 있다. 이 대표는 검찰이 대장동 및 성남FC 비리와 관련해 영장을 청구하자 민주당 의원들에게 ‘친전’을 보내 “개인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 파괴”라며 “맞서 싸워달라”고 지시했다. 검찰 조사를 받고선 “의연하게 저들의 야당 파괴, 민주주의 파괴 시도를 분쇄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을 부숴도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말라”고도 했다. 대체 개인 범죄 의혹에 대한 수사가 민주주의 파괴와 무슨 연관이 있나. 민주주의를 이렇게 타락시키고, 똥값 취급해도 되나.

당도 한통속이다. 김의겸 대변인은 “민주주의를 지키느냐 무너뜨리느냐 기로에 서 있다”고 했다. 우원식 의원은 “이재명과 문재인을 지키는 게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들만 민주주의 사용 면허를 받은 듯, 고질적인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만들고 있다. 이해찬 고문은 “무도한 정권의 기소를 이겨내야만 민주화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남북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여전히 ‘20년 집권’ 착각에 갇혀 있다. 증거와 진술이 넘쳐나는데도 이 대표를 수사하지 않는다면 그게 정치 검찰이다. 그것도 성남시장 시절의 개인 불법 혐의 방어를 위해 싸우는 것을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투사로 둔갑시켜 버렸다. 이런 논리 비약, 억지가 어디 있나. 독재 타도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란 시대착오적 인식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민주당의 처연한 현실이다. 이 대표가 ‘조봉암 사법 살인’ ‘김영삼 의원 제명’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을 거론하며 자신의 처지와 비교한 발상에선 헛웃음이 나온다. 조봉암 김영삼 김대중 같은 한 시대의 지도자들과 자신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정치 희생양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한편의 부조리극이다.

국민까지 방탄막이로 동원하는 것도 어이가 없다. 이 대표는 장외집회에서 “촛불의 강물이 정권을 끌어내릴 만큼 국민은 강하다. 국민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싸우자”고 했다. “이재명을 지키는 것이 여러분을 지키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허황스러운 발언도 했다. 자신과 국민 전체를 한편으로 해 윤석열 정권과 대결하는 황당한 프레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선 ‘이 대표 구속’ 응답이 반대보다 많다. 그런데도 ‘이 대표=국민’류의 발언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혹세무민이요, 교묘한 대국민 세뇌용처럼 느껴진다. 이 대표는 초선 의원들을 만나선 “공천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체포동의안 부결 미끼로 공천을 대표 마음대로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왕적 총재 시절의 비민주적 작태다.

민주당의 반민주 행태는 체질로 굳어졌다. 이견이 큰 법안은 시간을 갖고 숙의토록 한 안건조정위원회 제도의 취지를 깡그리 무시하고 비열한 꼼수까지 부려가며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망가뜨리고 있다. 다수결 원칙은 과잉 금지 등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존중한다는 바탕 아래서 작동돼야 하는데, 다수 의석을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는 보검처럼 여긴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며 작정하고 시작된 대표 개인과 당의 ‘인계철선’화는 전체주의 정당과 무엇이 다른가. 팬덤이 이 대표 검찰 출석을 체크해 불참 의원들 ‘수박(겉과 속이 다른 배신자) 리스트’를 돌리고 집단적 ‘좌표찍기’에 나서면서 의원들은 한껏 움츠러들었다. 이 대표는 대의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이런 ‘팬덤 포퓰리즘’에 공공연히 의존하고 있다. 말은 ‘선당후사(先黨後私)’지만 당 전체가 온통 ‘선사후당’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나온 무더기 반란표는 이 대표 체제의 위기를 의미한다.

그런데도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는 “우리가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대표는 틈만 나면 “민주주의가 질식당하고 있다”고 했다. 대체 누가 그렇게 하고 있나.

김해영 전 민주당 의원이 “민주당은 집단적 망상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더 보태고 뺄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