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4 이동통신이 못나오는 이유
2001년 2월 안병엽 정보통신부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했다. 국내 통신시장을 3개의 유무선 종합통신사업자 그룹으로 개편하도록 유도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1997년 PCS(개인휴대통신) 사업자 등장으로 5사 체제로 전환된 뒤 과당경쟁과 중복 투자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석호익 정보통신지원국장은 “신규 사업자 진입을 억제하고 기존 사업자 간에는 업계 자율로 M&A(인수합병)와 퇴출이 가능한 시장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고 했다. 이듬해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인수로 구축된 이동통신 3사 체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2년 만인 지난 15일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선 정반대 발언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금융·통신의 과점을 깨라”고 부처에 지시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신규 사업자 진입장벽 완화 등을 포함한 통신시장 경쟁 촉진 방안을 상반기에 마련하겠다”고 했다.

22년째 이어진 3사 과점체제

국내 통신시장은 과점 상태다. 작년 말 기준 SK텔레콤(40.1%) KT(22.3%) LG유플러스(20.7%)의 점유율 합계는 83.1%다. 나머지는 2010년 도입된 알뜰폰 점유율(16.9%)이다. 국내에서 20년 넘게 과점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 시장은 이미 가입자 수에서 포화 상태다. 인구 100명당 가입자가 140.6명(2021년 기준)이다. 미국(107.3명) 영국(118.6명) 중국(121.5명) 등을 크게 웃돈다. 한국보다 많은 국가는 일본 러시아 정도다.

반면 사업자 수는 별 차이가 없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 중국 일본 독일 호주 등 대부분 국가가 3개 사업자(점유율 5% 미만 제외) 중심이다. 4개사가 있는 영국은 3위(보다폰)와 4위(쓰리) 사업자 간 합병을 논의 중이다. 이렇다 보니 국내 통신 3사 매출(합산)은 2014년 정점을 찍고 정체 상태다. 이 기간 매출 증가율은 한국 경제성장률에도 못 미쳤다. 3사 영업이익이 2년 연속 4조원을 넘긴 했지만, KT·LG유플러스 이익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그간 제4 이동통신사업자 선정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0년부터 7년에 걸쳐 사업자를 허가하려 했지만, 사업계획이나 자금조달의 구체성이 떨어진 탓에 불허했다. 정부는 현재 28㎓ 대역의 5세대(5G) 통신 서비스용 주파수를 활용할 신규 사업자 선정을 추진 중이다.

실패로 귀결될 정부 시장개입

윤 대통령 말 한마디에 과기정통부는 비상이다. 5일 만인 지난 20일에는 ‘통신시장 경책촉진 정책 방안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었다. “사전 담합이 아닐지라도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담합이 형성되는 분위기가 없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박윤규 2차관)는 궤변도 나왔다.

물론 최근 사태는 통신사들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5G 요금제 출시 후 요금 경쟁이나 서비스 개선은 뒷전이었다. 그렇다고 정부가 엉뚱한 처방을 들이대선 곤란하다. 과점을 깨면 일시적으로 통신비는 내려갈 수 있지만, 과당경쟁이나 투자 지연이란 후폭풍이 불어닥칠 게 뻔하다. 결국 20여 년 전처럼 구조조정의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윤 대통령이 큰 영향을 받았다는 책 <선택할 자유>의 저자 밀턴 프리드먼은 “불완전한 시장이라도 불완전한 정부보다 낫다”고 했다. 인위적인 시장개입은 실패를 낳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