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친동생이자 쌍방울 부회장인 A씨가 직원을 사무실에서 강제로 내보낸 뒤 조직적으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뇌물을 제공한 증거를 없앤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해당 직원을 빨리 내보내라며 소리치는 등 격앙된 모습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8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A씨 등 쌍방울 임직원 12명의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쌍방울그룹이 이 전 부지사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2021년 10월부터 조직적인 증거 인멸에 나섰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그룹이 제공한 법인카드를 사용해 수천만원을 유용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인 2022년 11월 13일(토요일) A씨와 그룹 윤리경영실장 B씨에게 “법인카드 사용 자료가 있는 PC를 교체하라”고 지시했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A씨와 B씨는 그날 임직원들을 쌍방울 본사로 불러들여 증거 인멸을 도모했다.

하지만 재경팀 직원인 C씨가 사무실에 출근한 게 변수가 됐다. 한 직원이 나서 C씨에게 “그만 퇴근하라”고 말했지만, C씨는 일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다급해진 A씨는 임직원들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그래”라고 외치며 C씨를 내쫓은 것으로 확인됐다. A씨 등은 그 후 이 전 부지사의 법인카드 사용 내용이 저장된 모든 PC의 하드디스크를 빼내 파괴하고, 해당 PC들은 전북 지역으로 보내 처분했다. 대신 새 PC를 같은 곳에 설치했다. 이들은 건물 CCTV 전원까지 끈 채 이틀에 걸쳐 이 같은 작업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들을 비롯해 김 전 회장의 불법 대북 송금과 해외 도피 등을 도운 쌍방울 임직원 12명을 지난달 30일 재판에 넘겼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해 10월 뇌물 수수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쌍방울그룹의 뇌물 제공이 대북 사업을 노린 불법 송금으로까지 이어져 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쌍방울그룹이 경기도와 공동 대북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다는 진술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 전 회장이 가까운 관계라는 진술 등이 법정에서 나오면서 대북 송금사건에 이 대표와 경기도가 관여했을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3일 김 전 회장을 구속기소한 데 이어 8일엔 그의 수행비서 박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김진성/최한종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