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스타일리스트 김민지…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등 참여
"한 장면 촬영에 식자재 선별부터 고증까지 준비만 몇 날 며칠…공부할 것 천지"
"음식 예쁘게 담는 게 전부가 아니죠…식문화 연출가라 자부"
"음식만 예쁘게 수량 맞춰 깔아달라고 하면 같이 작업 안 해요.

대본에 맞춰 식자재 선별부터 조리법 연구, 여기에 배우 의상이나 공간에 맞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사극에는 역사 고증까지 음식 하나를 보여주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밤새죠."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서 한석규가 재료를 썰고, 볶고, 끓여 만든 요리에는 정성이 가득하다.

노란 피망과 초록색 시금치가 들어간 잡채, 연한 갈색빛이 도는 보리굴비, 송송 썬 초록색 쪽파를 품은 명란젓.
이 음식들은 푸드스타일리스트 김민지(44)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김씨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2021), 힐링 요리 드라마 '초콜릿'(2019) 등 수십편의 작품에 참여한 업계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최근에는 중국 드라마 '러브 다이닝' 촬영에도 참여했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아직 대중에게는 낯선 이 일은 김씨의 말대로 단순히 음식을 예쁘게 차려내는 직업이 아니다.

극의 흐름에 따라 음식에 때로는 따뜻한 분위기를, 때로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강창래 작가의 실화 바탕 에세이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어설픈 솜씨로 요리를 하는 남편의 이야기다.

김씨에게 주어졌던 미션은 요리 초보가 간장과 기름을 쓰지 않고 만든 암 환자의 식사를 정성이 담긴 집밥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아가씨'에 나오는 정갈한 에키벤(일본 철도역에서 파는 도시락)이나 사극 드라마의 화려한 수라상처럼 예쁘게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했다.

"음식 예쁘게 담는 게 전부가 아니죠…식문화 연출가라 자부"
김씨는 "환자식을 맛있게, 그렇다고 전문가가 요리한 것 같지는 않게 만들어야 하니 실험을 하는 것처럼 레시피를 정말 다양하게 시도했다"며 "음식이 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맛없어 보이면 안 되니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잡채를 하더라도 간장이 빠지니 당면이 허연색이라 야채 비중을 늘리고 피망, 시금치 등 색색의 야채를 살렸다"며 "망고주스는 어떤 종류의 망고를 쓰느냐에 따라 농도가 다르고 색깔도 다르게 나오니 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망고를 다 갈아보고, 퓌레를 섞어도 봤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완성된 요리들은 극 중 대사처럼 '폼'이 난다.

무염 잡채는 색색의 채소들이 맛깔스럽게 구미를 당기고, 과일주스는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선명하고 투명한 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완성된 음식뿐만 아니라 요리를 하는 과정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게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일이다.

가령, 대파 한 줄기를 한 써는 장면을 위해서는 대파를 다섯 단 정도 사서 굵기와 길이 등 크기가 같은 것을 골라놓고 촬영이 중단될 때마다 교체해줘야 한다.

"음식 예쁘게 담는 게 전부가 아니죠…식문화 연출가라 자부"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서는 가정집 느낌을 내기 위해 홈쇼핑에서 세트로 팔 것 같은 무늬가 없는 식기들을 택했지만, 식기 선택부터 식탁 위에 식기구를 어떻게 배열할지까지 모두 푸드스타일리스트의 몫이다.

김씨는 "음식이 놓이는 공간을 연출해야 하므로 배우들의 의상이나 조명, 인테리어 등을 다 고려해서 식기를 고르고 배치한다"며 "한 장면을 찍더라도 준비할 것은 수만 가지"라고 말했다.

"사극 대본에 '닭 손질'이라고 돼 있는데 배우가 계속 닭만 주무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고서에 당시 볏짚으로 닭을 문질러 손질했다는 걸 보고 그 도구를 제작하기도 하죠. 파스타를 만들 때도 건면과 생면의 조리법이 달라요.

주인공이 실컷 생면이라 맛있다고 해놓고 건면 조리법으로 요리를 하면 우습잖아요.

"
그는 자신을 이 업계의 '고인물'이라고 했다.

영화 '모던보이'(2008)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도 공부할 것들이 아직도 많이 쌓여있다고 했다.

"음식 예쁘게 담는 게 전부가 아니죠…식문화 연출가라 자부"
그는 "20년 전에는 푸드스타일리스트라고 이것저것 체크를 하면, 요리사 중에는 조리된 음식만 예쁘게 담아달라고 하면서 약간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그 편견을 이기려고 나라별로 다른 조리용어나 조리기술에 관해 공부하고 프랑스, 멕시칸, 이탈리아, 일본, 태국 등 다양한 국가의 요리를 많이 먹으러 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음식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역사, 건축, 컬러 등 공부할 게 천지"라며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는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왜 시나리오, 의상, 콘티를 달라고 하냐고 눈총도 받았는데, 같이 작업을 하다 보면 '어디서 공부했냐'는 얘기도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푸드스타일리스트는 핀터레스트(이미지 기반 소셜미디어)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작업물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에 담긴 식문화나 제품의 특장점을 보여줄 수 있게 연출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음식 예쁘게 담는 게 전부가 아니죠…식문화 연출가라 자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