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학자 김희영, 민음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권 완역
"프루스트는 총체적 리얼리즘 작가…번역한 10년 행복한 시간"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사후 100주년인 올해 완간하게 돼 굉장히 기뻐요.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프루스트를 통해 많은 위안을 받았고, 새로운 프루스트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
김희영(73)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프랑스 작가 프루스트(1871~1922)의 역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10년 만에 완역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그는 16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프루스트는 삶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작가로, 그와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프루스트를 평생의 동반자로 택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프루스트 전문가'로 불리는 김 교수는 한국외대에서 프랑스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3대학에서 프루스트 전공으로 불문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프루스트가 코르크로 문틈을 막은 방에 스스로 유폐돼 총 7편에 이르는 이 작품을 14년에 걸쳐 썼듯이 지난 10년간 오로지 이 작품 번역에만 매달렸다.

김 교수는 "옛날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며 "낮에 자고 자정에 일어나 주로 밤에 작업을 했다.

집중해서 6~8시간씩 번역했다"고 돌아봤다.

민음사는 김 교수의 번역으로 2012년 이 작품의 1편 '스완네 집 쪽으로'를 두 권으로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 7편 '되찾은 시간'을 두 권으로 펴내며 총 13권으로 완간했다.

민음사는 13권은 총 5천704쪽에 이르며, 11권까지의 누적 판매 부수는 약 25만 부에 달한다고 밝혔다.

"프루스트는 총체적 리얼리즘 작가…번역한 10년 행복한 시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한 소년이 유년기를 거쳐 사랑을 알게 되고 예술을 향유하며 한 시대를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년기의 추억, 사랑과 정념, 질투와 욕망, 상실과 죽음, 예술, 사회, 문화, 정치 등 인간 삶의 총체적인 모습이 담겼다.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통해 인간 내면과 시대상을 정밀하게 구현했다.

김 교수는 "프루스트는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손해를 본 작가"라며 "난해하고 어려운 작가로 각인돼 있지만, 굉장히 전통을 존중하고 새로움을 추구한 작가"라고 평했다.

이어 "오히려 프루스트는 총체적인 리얼리즘을 보여주려 한 작가"라며 ""외적 현실의 모방이나 재연은 진짜 리얼리즘이 아니다.

어떤 사건이 우리 의식 속에 투영된 것까지도 총체적으로 포착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프루스트는 이 작품에서 성당과 채색 유리, 의복, 화장, 요리, 저잣거리 소음까지 세밀하게 묘사한다.

김 교수는 이러한 작법에 대해 "대개 역사는 중요한 사건들만 다루지만, 소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세밀한 요소들을 다뤄준다"며 "이문열 선생이 이 작품에 대해 '극세밀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굉장히 잘 파악하셨다, 프랑스인들에게 이 작품이 '기억의 궁전'으로 불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프루스트는 총체적 리얼리즘 작가…번역한 10년 행복한 시간"
이번 번역에서는 1987년 출간된 프랑스 플레이아드 전집 판본을 새로운 저본으로 삼고, 프루스트 연구자들의 주석 작업과 여러 국가의 판본을 비교·참고해 번역을 진행했다.

길고 난해한 프루스트 문장을 번역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김 교수는 원문을 존중하며 문장과 단어의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문체는 작가 세계관의 반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이전 번역본에서 나타난 어휘상의 오류나 시대적 풍습과 프랑스어 다의성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오역도 바로 잡았다.

그는 13권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구절로 1권의 19~20쪽을 꼽았다.

"추억이 저 높은 곳에서부터 구원처럼 다가와 도저히 내가 혼자서는 빠져나갈 수 없는 허무로부터 나를 구해 주었다.

"
김 교수는 "작품 속 화자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연인(알베르틴)의 죽음이란 두 고통을 겪는다"며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했을 때 망각에서부터 우리를 구하고 치유해주는 유일한 수단은 글쓰기밖에 없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