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기꾼이 된 암호화폐 천재
세계 3위 거래소였던 FTX의 파산 신청이 암호화폐 시장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사태의 중심에는 젊은 천재로 추앙받던 FTX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샘 뱅크먼프리드(30)가 있다.

그의 성공과 몰락은 지난 5월 루나-테라 사태의 장본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31)의 데자뷔다. 뱅크먼프리드는 권도형과 마찬가지로 갓 서른을 넘긴 기술 엘리트로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스탠퍼드대 로스쿨 교수다. 권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 다 기술만능주의에 빠진 블록체인 신봉자였다. 뱅크먼프리드는 자체 발행한 코인을 기반으로 높은 레버리지(차입)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메커니즘을 개발했다고 자신했다. 권도형도 달러나 국채 대신 알고리즘으로 가치 하락을 막는다는 스테이블 코인을 개발해 ‘천재 개발자’로 유명해졌다.

그들이 제시한 유토피아적 청사진에 투자자들은 돈 보따리를 풀었다. 뱅크먼프리드를 미국 중앙은행이 없던 시절 중앙은행 역할을 한 존 피어폰트 모건에 빗대 ‘가상통화업계의 JP모건’으로 불렀다. 권도형은 ‘한국판 일론 머스크’로 통하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소개됐다. 막대한 부에 취한 둘은 모두 성공을 과신했다. 뱅크먼프리드가 “가상자산 거래소 여럿이 곧 문을 닫을 것”이라고 공언하며 백기사를 자청한 게 불과 넉 달 전 일이다. 권도형도 루나 폭락 직전 “현재 존재하는 코인 스타트업의 95%는 무너질 것”이라며 “그런 걸 보는 게 즐겁다”고 조롱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한 ‘코인 유토피아’의 실상은 허구로 드러났다. 130여 개 자회사를 거느린 FTX 제국의 파산 신청은 계열사 간 자전 거래를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는 폭로가 도화선이 됐다. 권도형이 만든 스테이블 코인 구조도 실상은 ‘코인 돌려막기’였다. 둘 다 사기꾼 의혹을 받으며 검찰 조사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혁신도, 금융도 아닌 엘리트들의 탐욕에 개미투자자들의 눈물과 한숨만 가득하다. 윤리의식 없이 허깨비 같은 기술만능주의가 빚은 대참사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