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잡지의 시대
잡지는 무료함의 해소제였고, 지식인의 필수품이었다. 인생의 가이드였고, 밥벌이의 수단이기도 했다.

손때 묻은 잡지로 기차역과 은행과 미용실에서 시간을 때웠고 ‘사상계’ ‘세대’ 등을 보면서 교양과 사고의 지평을 넓혔다. ‘여성중앙’ ‘영레이디’는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든든한 언니였다. ‘보물섬’ ‘밍크’ 같은 만화잡지는 오프라인 시대의 웹툰이었다.

흔하디흔했던 잡지였지만 요즘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스마트폰은 종이 잡지의 아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손바닥만 한 화면에서는 유튜브, 뉴스레터 등 잡지를 대신해 읽을거리가 넘쳐난다. 2016년 1조원을 웃돌던 잡지산업 전체 매출이 최근 7500억원대까지 쪼그라든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잡지의 생명력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2016년 4931종이었던 잡지 종류가 5636종(2021년)으로 15% 가까이 늘었다. ‘요새 누가 잡지를 읽나’ 싶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할 만한 수치다.

잡지는 이제 ‘취향의 허브’로 변신을 꾀하며 생존의 길을 찾고 있다. 자신의 취향을 채워줄 수 있다면 최근호와 과월호를 가리지 않고 잡지를 사주는 독자들이 생겨나면서다. 이들 독자는 발행주기도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유행하는 것도 관심사가 아니다. 새로운 소식을 전해 들으려 하기보다는 취향과 관련한 정보를 얼마나 촘촘하게 전해주는지 먼저 따진다. 정기 간행물로 발행하지만 동시에 단행본 책으로도 인기를 얻게 됐다는 얘기다.

지구촌의 유명 브랜드를 한 호에 하나씩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월간지 ‘매거진B’는 2011년 11월 창간호부터 최신 호까지 모든 잡지를 지속적으로 판다. 온라인 크라우드펀딩으로 발행되는 ‘글리프’는 독자들의 성화에 못 이긴 독립서점들이 매장에 과월호를 진열해뒀다. 정기간행물로 발행하지만 동시에 단행본 책으로도 인기가 많다는 얘기다. 잡지가 ‘영생의 반열’에 오르는 중이다. 유행을 반영하지만 유행과 상관없이 읽을 만한 잡지가 대세다. 기업들은 잡지를 직접 만들며 소비자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음식을 주제로 ‘매거진F’를 만들고, 유니클로는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접목한 ‘라이프웨어(LifeWear)’를 발행한다. ‘비브비브’ 등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블랭크코퍼레이션은 ‘툴즈(TOOLS)’라는 잡지를 지난해 창간했다.

바야흐로 ‘당신을 위한’ 잡지의 시대가 도래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잡지도 어디선가 인쇄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마침 다음달 1일부터 국내 처음으로 ‘잡지주간’이 열린다. 무엇이든 읽기 좋은 가을날, 취향 탐험의 기회가 찾아왔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