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P2X 기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제 조건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이 무분별하게 추진돼 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의 전체 생산 전력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지난해 기준 4.7%가량에 불과하다. 특히 태양광 쏠림이 심하다. 지난해 설치된 신규 태양광 설비 용량은 4.1GW에 달한 데 비해 풍력은 70㎿에 불과했다. 6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조용채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한국은 태양광 발전에 대한 투자 편중으로 속도가 뒤처진 상태”라고 말했다. 체계적인 지역별 수급 예측에 실패해 전력망 등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은 것도 문제다.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선 남아도는 신재생에너지 전기 출력을 제어하는 데 비용을 들이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은 해상풍력 발전에 유리하다고 입을 모은다. 셸은 ‘문무바람 프로젝트’를 통해 울산에 아시아 최초로 약 1.3GW급 부유식 해상풍력발전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오스테드는 인천에 1.6GW 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세우기로 했다. 두 곳 모두 2020년 전후로 투자를 결정했지만 이후 진행은 더디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보조금 중심의 정부 지원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한국은 태양광발전 사업에서도 공공입찰 시스템 없이 보조금 지급만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렇다 보니 정체불명 사업자들까지 ‘깃발 꽂기’식으로 개발에 뛰어들었고 난립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풍력발전 분야에서도 똑같은 문제점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생에너지 기반이 약하면 P2X 기술 개발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국내 최대 규모인 100㎿급 그린수소 생산 실증설비를 구축하는 1단계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울산의 부유식 해상풍력과 연결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착공이 지연되고 있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미국 영국 일본 대만 등은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부지로 개발할 곳을 지정한 다음 부지의 발전사업권을 놓고 입찰을 한다. 정부가 발전사업 초기 단계의 위험을 떠안기 때문에 사업의 안정성이 담보된다.

사업 초기 비싼 발전단가 때문에 수요가 받쳐주지 않는 문제점은 보조금 등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덴마크 정부는 2008년 처음 해상풍력 발전을 시작할 때 ㎿h당 160~170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대만 반도체기업 TSMC는 2년 전 오스테드와 920㎿ 규모의 해상풍력발전 전력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대만 정부는 송전망 이용료의 90%를 부담해주기로 했다.

활발한 산학협력도 재생에너지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마티 이그나치오 덴마크공과대(DTU) 풍력에너지시스템학과장은 “DTU가 업계와 함께 개발한 ‘아틀라스’는 최적의 풍력발전 입지를 찾는 데 도움을 주도록 설계된 소프트웨어로 현재 덴마크를 넘어 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DTU는 오스테드와 풍력발전 터빈의 날개를 재활용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셸도 0.5㎿ 규모 부유식 태양광 패널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 같은 산학협력이 아직 드물다. 서울대는 최근 탄소중립 관련 교과과정을 신설해 전문 인재 양성에 나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