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의 논점과 관점]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주목받지 못했지만 소개할 만한 일이 있다. 지난 5일 있었던 관세행정발전심의위원회(관발심) 회의다. 매년 한 번씩 열리는 회의로, 10여 명의 민간 위원이 관세 행정에 대해 조언하는 자리다. 필자도 위원으로 참석했다. 크게 세 가지에 놀랐다.

우선 분위기. 현재 정부 내 위원회는 636개다. 증권선물위원회처럼 정부 업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행정위원회(42개)가 있고, 관발심처럼 단순 자문기구(594개)도 있다. 그런데 상당수가 개점 휴업, 유명 무실에 가깝다. 정부가 위원회 중 39%(246개)를 통폐합하려는 이유다.

심상찮은 공직사회 엑소더스

이런저런 회의를 다녀봤지만 이날 회의는 달랐다. 참석자들은 2시간 동안 회의 주제인 해외직구 관련 제도·서비스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윤태식 관세청장은 발언 내용을 메모했다가 회의 말미에 일일이 개선 여부를 답변했다. 참석한 위원들은 “대단히 모범적인 회의였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분위기가 가능했던 건 꼼꼼한 행사 준비 때문이다. 지난 5월 취임한 윤 청장은 해외직구 관련 민원이 급증하는 것과 관련, 서비스 개선 검토를 지시했고 그렇게 20개 과제가 선정됐다. 윤 청장은 행사 직전까지 직원들과 토론에 토론을 거쳐 토씨까지 챙겨가며 자료를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전문상담 인력 증원, 실시간 통관정보 조회시스템·모바일 환급시스템 구축 등의 개선 사항이 나왔고, 위원들은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조언을 보탤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새로운 서비스가 ‘돈 한푼 더 안 들이고’ 제공된다는 점이다. 기존 자원의 재배치·재활용만으로도 얼마든지 연말까지 그런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최근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중앙 18개 부처에서 3449명의 공무원이 스스로 옷을 벗었다. 자진 의원 면직자가 3000명을 넘은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전체 인원(48만515명)의 1%가 안 되지만 문제는 8·9급 하위급을 중심으로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데 있다.

우공이산 공복들을 주목한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박봉에 ‘뭘 해도 욕먹는’ 처지가 싫어서라고 한다. 젊은 관료들에겐 꼰대 같은 관료사회 분위기도 불만이다. 한마디로 공직에서 일할 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새 정부 들어서는 임금 동결에다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까지 나갈 이유가 더 늘었다. 올해 9급 공무원 채용 경쟁률은 30년 내 최저다. 남은 이들도 대통령 지지율이 20%대까지 곤두박질치자 이러다 정권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눈치만 보고 있다고 한다. 공직사회가 위태위태해 보인다.

길고 추운 겨울의 초입이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고부채의 복합 경제위기 경고 속에 ‘제2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가계는 고금리와 부채에, 기업은 글로벌 새판 짜기와 시계제로 상황에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정치는 정쟁(政爭)에 날 새는 줄 모른다. 공직사회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할 때다. 외환위기와 카드사태,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렇게 나라가 버틸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묵묵히 맡은 바 일을 해나가는 공복(公僕)이 필요하다. 관세청의 우직한 우공이산(愚公移山) 행보가 돋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