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연의 논점과 관점] 타이밍 놓친 외환시장 개입
미국발 물가 쇼크가 금융시장을 강타한 지난 14일. 원·달러 환율은 개장과 함께 19원40전이나 치솟았다(원화 가치 하락).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이 거시경제, 금융 관련 부서가 참여하는 비상경제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시장의 촉각이 집중된 가운데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주의하면서 각별한 경계감을 갖고 금융·외환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란 발언이 나왔다. 이 같은 통상적인 멘트에 환율은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같은 날 일본 외환시장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오전 엔화 낙폭은 오히려 원화보다 컸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기자들과 만나 “최근 (환율) 움직임이 급속하고 일방적이어서 매우 우려된다”며 “그런 움직임이 계속된다면 어떤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발언이었다.

거꾸로 움직인 한·일 환율

한·일 당국자의 발언 이후 두 나라 환율 향방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추락을 거듭하던 엔화 가치는 스즈키 재무상의 언급에 더해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시장 개입 이전 시세를 묻는 호가 확인(레이트 체크)을 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극적인 반등에 성공했다. 반면 원화 가치는 추락을 거듭했다. 다음날 개장 초 원·달러 환율이 1399원으로 뛰어 1400원 선이 위협받자 당국은 부랴부랴 ‘실탄 개입’에 나섰다. 거래 물량이 적은 점심시간을 틈타 7억달러(약 9800억원) 규모의 달러를 풀어 방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지만 환율을 불과 6원 떨어뜨리는 데 그쳤다. 전날 상승 폭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그나마 약발은 반나절을 못 넘겼다. 당국의 실탄 개입에도 환율은 전날보다 2원80전 오른 1393원70전에 장을 마쳤다.

환율은 국가 경제의 주요 변수나 외자 유출입에 따라 변동하지만, 심리적 요인에 의해 증폭되는 경향을 보인다. 시장이 불안하면 심리적 영향은 더욱 커진다. 외환당국이 일시적인 변동성을 제어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이유다. 실개입은 큰 비용을 동반하기 때문에 적기에 적절한 수위의 구두 개입을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가수요 등에 따른 오버슈팅(일시적 가격 폭등)으로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에 이를 때까지 당국의 대처는 무대응에 가까웠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 7월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한 후 원화 가치가 유난히 가파른 하락세를 보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원화 절하폭은 태국 바트나 인도네시아 루피화를 뛰어넘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당국은 “강달러는 세계적 현상”이라며 팔짱만 끼고 있었다. 심지어 미국발 물가 쇼크의 후폭풍이 빤히 예상되는 날에도 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뒤늦게 대량의 외환보유액을 소비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일상이 돼가고 있다. Fed는 이번 주에도 자이언트스텝 이상의 고강도 긴축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금리 격차에 따른 자본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한·미 금리차를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힌 마당에 외환당국마저 수수방관한다면 환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외환시장에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연기금의 해외투자 속도 조절 등 다방면의 외환 대책과 함께 적기에 맞춘 당국의 노련한 개입이 필수다. 외환당국이 번번이 관리에 실패해 시장 신뢰마저 잃는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