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하반기 반도체 매출 전망을 기존보다 30% 이상 낮춰 잡았다는 보도다.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반도체 수요가 위축된 탓이다. 재고가 역대 최대 수준으로 쌓인 상황에서 D램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반도체 빙하기는 길어질 전망이다. 불황 여파로 대기업들이 잇따라 투자 철회·축소에 나서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돈줄’이 끊기는 등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 악재 속에서도 실적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탄탄한 체력을 자랑하던 삼성전자의 매출 전망 하향은 우리 경제에 큰 시련을 예고한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품목이다. 반도체 부진의 충격은 생산과 수출 전선에서 이미 현실이 됐다. 반도체 생산이 줄면서 지난 8월까지 산업생산이 두 달째 감소했다. 9월에도 무역적자가 이어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달엔 석유화학 제품 수출도 15.1% 줄고, 철강 수출이 21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주력 수출 산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인 48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유례없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에 내몰린 기업들은 속속 투자와 사업을 취소·축소하는 등 초긴축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청주공장 증설을 보류했다. 현대오일뱅크와 한화솔루션도 생산시설 설립 계획을 철회했다. 해외 빅테크 기업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신제품 아이폰14 증산 계획을 취소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창업 이후 처음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구글과 아마존은 비용 절감에 착수했고,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내년 투자를 50% 줄이기로 했다.

실물 경제의 위기 경고음이 요란한데, 기업을 제외한 정부와 정치권, 가계의 위기의식은 실종된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기업들의 돈 가뭄이 심각한데도 정부의 상황 인식에는 다급함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금융시장점검회의는 기존 회사채 시장 안정대책을 재확인하는 정도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국은 엄청난 외환보유액이 있고 경상수지도 괜찮다”며 위기론을 일축했다. 치솟는 환율에 속수무책이었고, 물가 상승엔 제품값을 못 올리게 ‘기업 팔 비틀기’로 대응한 점에 비춰보면 안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와중에 여야 정치권은 ‘위기 불감증’이라도 걸린 듯하다. 반도체특별법과 법인세 감면 등 세제 개편·규제 완화 법안 등 시급한 경제·민생법안이 산더미인데, 야당은 세율 인하를 ‘부자 감세’로 호도하며 막겠다고 하고 여당은 내분에 신경 쓰느라 추진 동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보복 수요’라고는 하지만, 고환율·고물가 시대에 인천국제공항이 해외여행객으로 미어터진다고 하니 국민의 경각심도 풀어진 게 사실이다. 정부와 기업, 국민 등 각 주체가 이전엔 경험하지 못한 퍼펙트스톰 앞에 비상한 각오를 다져야 할 때다.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