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중인 여동생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 레바논 여성이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 자기 계좌에서 돈을 챙겨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출처=트위터
암 투병 중인 여동생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 레바논 여성이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 자기 계좌에서 돈을 챙겨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출처=트위터
레바논에서 암 투병 중인 자신의 여동생 치료비를 위해 한 여성이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 자기 계좌에서 돈을 챙겨 소셜 미디어에서 영웅이 됐다. 자금난으로 레바논 은행들의 예금 인출 등이 엄격해지면서 은행 강도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 병원비 등을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이는 인물들에 레바논 국민들은 오히려 환호를 보내고 있다.

14일(현지시간) AP·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살리 하페즈(28)는 2만 달러가 들어있는 가족계좌에서 1만3000달러(한화 약 1810만원)를 인출했다.

하페즈와 동료들이 생중계한 영상에서 그녀는 은행 창구 직원에게 말을 건네다 갑자기 총을 꺼내 들어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동료들은 블롬(BLOM)은행 베이루트 지점 출입문을 걸어 잠궜고, 그녀는 창구직원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페즈는 "난 살리 하페즈다. 병원에서 죽어가는 여동생의 예금을 인출하러 왔다"면서 "살인이나 방화를 할 생각은 없다. 내 권리를 주장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언론에 23살 여동생의 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으며, 당시 꺼내 든 총은 장난감 총이라고 밝혔다.
암 투병 중인 여동생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 레바논 여성이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 자기 계좌에서 돈을 챙겨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캡처=레바논 방송사 '알 자디드'
암 투병 중인 여동생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 레바논 여성이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 자기 계좌에서 돈을 챙겨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캡처=레바논 방송사 '알 자디드'
하페즈는 여러 차례 은행을 방문했으나 은행원들이 레바논 파운드화로 한 달에 200달러만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레바논 은행들은 자금난에 처해 2019년부터 외화 인출을 엄격히 제한, 수백만 예금자들의 저축을 묶은 상태다. 레바논은 국가 경제가 계속 악화하면서 인구의 약 4분의 3이 빈곤에 빠졌다. 2019년 이후 레바논 경제 규모는 60% 가까이 축소됐고 레바논 리라의 화폐가치는 90% 절하됐다.

그는 이미 개인 소지품을 상당수 팔았고, 여동생을 위해 신장 매매까지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지점장에게 여동생이 죽어가고 있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호소도 해봤다"며 "결국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하페즈와 공범들은 보안요원들이 현장에 도착하기 전 은행 뒤편 깨진 유리창을 통해 달아난 것으로 전해진다. 레바논의 소셜 미디어에서 하페즈는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은행의 예금 인출 제한 등에 레바논 국민들의 분노가 큰 상황이다. 하페즈와 같은 유사 강도 사건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하페즈가 은행을 찾은 같은 날 레바논 북동부에서도 한 강도가 총알이 장전되지 않은 엽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 예금 인출을 요구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11일에도 바샴 알 세이크 후세인(42)이라는 남성이 가족들의 병원비를 위해 예금을 인출하려고 하다 실패하자 은행에서 소총을 들고 인질극을 벌이는 사건도 발생했다. 후세인은 결국 약 3만5000달러(한화 약 4872만원)의 예금을 찾아 레바논 국민들로부터 영웅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