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이 다른 회사나 사람의 대출을 보증했더라도 이 결정이 해당 조합의 총회를 거치지 않고 이뤄졌다면 효력이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총회 의결을 건너뛰고 이뤄진 조합의 보증을 받아 돈을 빌린 쪽이 갚지 않더라도 빌려준 쪽에선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해당 조합에 대신 돈을 갚을 것을 요구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재판장 민유숙 대법관)는 최근 A씨가 부산의 B지역주택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깨고 이를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8년 11월 B조합의 보증을 받아 C회사에 2억5000만원을 빌려줬다. 이 중 1억원은 2019년 1월 30일까지, 나머지 1억5000만원은 같은 해 2월 28일까지 돌려받기로 했다. 하지만 C회사가 약속한 시기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A씨는 보증을 선 B조합에 2억5000만원을 대신 갚을 것을 요구했다. B조합은 “이 보증은 조합원총회를 거치지 않은 채 이뤄졌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하며 변제를 거부했다. A씨가 이에 반발해 보증계약대로 대여금을 대신 갚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면서 분쟁이 본격화했다.

대법원은 무주택자인 조합원들의 주거 안정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지역주택조합 관련법의 취지에 무게를 두고 B조합 손을 들어줬다. 주택법 11조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지역주택조합을 세우려면 조합 규약에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 체결’을 필수적인 총회 의결사항으로 명시하게 돼 있다.

대법원은 “주택건설사업을 장기간 시행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실질적인 절차를 마련함으로써 소수 임원의 전횡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것이 관련 법의 입법 취지”라며 “A씨 역시 당연히 (보증 계약에 대한) B조합의 총회 의결이 있었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단순히 “총회 의결 여부를 알지 못했다”는 주장만으로는 조합이 맺은 계약의 효력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원고는 피고가 조합원총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절차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서 보증 약정의 효력을 판단했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을 밝히지 못하는 한 계약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다”고 했다.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에 대해서도 “보증 약정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