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5 생산라인에서 직원이 차량을 검수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5 생산라인에서 직원이 차량을 검수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중국에 이어 미국까지 자국 기업에 유리한 전기차 구매 보조금 혜택을 강화하면서 우리나라의 전기차 보조금 지원 제도 역시 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자동차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의 경우 '신에너지차 권장 목록'으로, 미국은 최근 발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자국의 전기차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만 국산차와 수입차 구분 없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에서 발효된 IRA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오는 7일까지 사흘 일정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 행정부와 의회 주요 인사를 잇따라 만나기로 했다.

IRA는 북미에서 생산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기차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해당 차량이 북미에서 생산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당장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현대차그룹이 미 조지아에 전기차 공장을 완공하는 2024~2025년까지 보조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아이오닉5, EV6 등은 전량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미 자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호가 철저한 중국에 이어 미국도 제네럴모터스(GM), 포드 같은 현지 기업에 유리한 전기차 산업 보호 정책을 펴면서 국내에서도 전기차 보조금 지원 정책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신에너지차 권장 목록'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실상 중국산 배터리와 부품을 사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고가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탈부착 장치(BaaS)가 내장돼 있어야 하는데 현재 중국 내에서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는 차량은 사실상 지리차, 베이징차 등 중국 기업들 밖에 없다. 심지어 한국 배터리 업체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조차 차별해 한국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한 개 제조사에 대해 연간 20만대의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했는데, IRA를 통해 이 규정을 폐지했다. GM, 포드, 테슬라의 경우 한 해 20만대까지만 전기차 보조금을 받았지만, 앞으로 추가 판매분에 대해서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사실상 IRA 규정이 자국 기업을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 '외부 급전 기능'이 있는 전기차에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는 식으로 자국산 전기차를 우대하고 있다. 외부 급전 기능은 지진, 해일 등 재난발생 시 전기차를 비상전력 공급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이다. 주로 일본산 전기차에 장착된다.

독일은 자국 기업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하이브리드차에 다른 유럽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보조금을 지원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자국 기업이 주로 저렴한 가격의 소형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점을 감안, 보조금 지급 가격 상한선을 설정해 고가 수입 전기차 판매를 억제하고 있다.
테슬라 홈페이지
테슬라 홈페이지
반면 국내에선 수입차와 국산차에 대한 전기차 구매 보조금 차별 규정이 없다. 우리나라에선 오로지 연비, 주행거리, 에너지효율, 가격 등에 따라서만 보조금을 차등 지급한다.

예컨대 국산차나 수입차나 똑같이 판매가격 5500만원 미만 100%, 5500만~8500만원 미만이면 50%를 지급한다. 올 상반기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는 국내에서만 약 400억원의 보조금을 받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초소형 전기차나 버스 같은 시장에선 중국 기업들이 활발히 뛰어들고 있어 '우리나라 세금으로 중국 전기차 기업을 키워주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전기버스의 경우 올해 보조금이 최대 7000만원, 초소형 전기차는 차량 종류에 관계 없이 400만원 정액 지원된다. 여기에 지자체별로 500만~700만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선 올 한 해 전기버스, 초소형전기차를 합쳐 중국산에 지급하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2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한자연) 연구원은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서 특정 국가 제품을 명시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국제 규범상 어렵지만, 자국산 제품 특성을 고려한 보조금 지급 방식을 통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세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