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가 재개발 조합원에 제안한 민원처리비 3000만원은 위법일까?
2020년 부산의 A재개발 조합이 시공사 선정총회를 열었다. 단독 시공을 내세운 P건설과 컨소시엄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다. 근소한 차이로 P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그러나 비대위라고 불리는 일부 조합원이 P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총회의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해당 조합은 최근까지 시공사와 도급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사가 제안한 금융지원의 적법성을 둘러싼 법정 다툼이 재개발 조합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 기준에 ‘건설업자는 입찰서 작성 시 이사비, 이주비, 부담금 등 시공과 관련이 없는 사항에 대한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는 제안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이 있다. 시공과 관련 없는 금전을 제안하는 것은 입찰 절차에서 금지되는 부정행위다. A조합 비대위는 P건설이 제안한 3000만원의 민원처리비가 시공과 관련 없는 금전 제안이라고 봐 가처분을 제기했다.

법원은 P건설이 지급을 약속한 금액이 가구당 3000만원에 이르고, 이로 인해 시공사를 선정하는 결의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해 ‘시공자 선정의 건’ 및 ‘선정된 시공자 계약 체결의 건’에 대한 결의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 후 조합은 시공사 선정 문제를 마무리 짓지 못한 상태에서 재개발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조합원은 P건설이 납부한 입찰보증금을 전액 몰취하고 새로운 시공자를 선정해야 한다며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조합이 가처분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이의를 제기했다. 가처분 이의를 담당한 1심 재판부는 여전히 가처분 결정을 유지하는 태도였다. 2심 재판부인 부산고등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총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취소시킨 것이다.

부산고등법원은 P건설이 시공자 선정 즉시 민원처리비로 3000만을 지급해준다는 사업 제안을 한 사실과 P건설의 홍보과장이 조합원을 상대로 민원처리비 3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민원처리비 3000만원이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 기준에 반하지 않는다고 봤다. P건설 사업제안서의 민원처리비 용도가 주택 유지 보수, 세입자 민원 처리 등 시공과 관계가 있는 사항이라는 것이다. 민원처리비는 조합원에게 무상으로 증여하는 것이 아니라 무이자 대여이므로 조합원에게 귀속되는 이익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또 법원은 P건설의 민원처리비 제안이 조합원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고 봤다. 조합원은 민원처리비 3000만원이 조합을 통해 대여하는 형식으로 지급되는 것이지, P건설이 조합원에게 증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조합원이 P건설을 시공사로 선택한 것은 민원처리비에 대한 제안 때문이 아니라 단독 시공과 저렴한 공사비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해당 조합은 민원처리비를 둘러싼 갈등으로 사업 진행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었다. 새로운 시공자를 선정하는 데는 비용과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법원은 시공자 선정 결의의 효력이 계속 정지될 경우 조합 내부 갈등이 심화할 가능성과 새로운 시공사 선정의 어려움으로 재개발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을 고려해 시공자 선정 결의의 효력을 정지시킬 필요성도 없다고 판단했다.

최근 건설사가 조합의 정비사업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조합원을 상대로 금융지원을 제안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민원처리비나 사업촉진비라는 이름으로 무이자 대여를 한다. 건설사가 조합에 자금을 대여해주면 조합원이 조합에 신청서를 작성·제출하고 입금받는 방법이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A조합은 조합원이 선택한 건설사의 민원처리비 문제로 인해 적지 않은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A조합은 물론 많은 정비사업지에서 건설사의 사업 제안과 지원으로 재개발 사업이 신속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고형석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