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하청 파업, 누구의 잘못인가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기자님, 거제에 살고 있는 주민입니다. 작년까지 남편이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근로자로 있었어요.조선소 하청업체 근로자는 지금 최저임금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경제 상황이 나쁘고 수주가 나쁘고.. 급여 동결 또는 삭감.. 인원 정리..폐업.. 그렇게 버티고 버티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이 번의 금속노조 탈퇴나 노사간의 이야기...이런 거 잘 모릅니다. 단지 한 단체의 파업이 불법이고 손해가 어떻고 그런 제목으로 뉴스에 뜨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기자님께서.. 거제 시민의 입장에서 바라봐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2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 지회파업 종료 협상이 타결되고 기자에게 한 거제 시민이 보내온 이메일이다. 파업 51일만에 극적으로 해결됐지만, 노사 양측에 모두 상처만 남긴 '봉합'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지역 사회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하청 근로자들과 가족들에게는 이번 사건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때 "지나가는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던 거제,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을까.

○활황 걷히면서 하청구조 민낯 '수면 위로'

조선업은 외화벌를 톡톡히 해 온 효자 업종이었다. 거제도 풍족한 곳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조선업 호황이 정점을 찍던 2010년 거제시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4200만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실업률도 한때 0.4~0.5%로 사실상 완전 고용상태였다.

호황일 때는 모두가 '좋았다'. 거제에서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반농담반진담처럼 돌았다.

하도급 구조의 끝단에 있는 일용직 물량팀 조차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돈을 벌어 들였다. 활황기에는 물량팀이 돈을 훨썬 더 버는 일이 발생해 협력업체 근로자를 빼가기도 했다. 또 물량팀을 두고 지역(거제-울산) 간 경쟁, 심지어 같은 조선소 안에서도 경쟁이 붙어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협력사 직원도 5년 장기 근속한 본공의 경우 직영(원청 정직원)과 동일한 복지혜택을 받기도 했다. 물량팀장 출신이지만 지금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50대 근로자 박 모씨는 "잘 나갈때는 전국에서 우리를 불러서 가고 싶은 곳을 골라 갔다. 고용승계 같은 건 필요 없었다"고 증언한다.

당연히 원청의 임금이나 근로조건도 크게 향상됐다. 호황은 영원할 줄 알았다.

전세계적 불황이 닥치면서 상황이 변했다. 한 때 30만 명에 육박하던 거제 인구는 이제 6만 명 넘게 줄어 24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원청은 허리띠를 졸랐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는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을 대폭 감축해 2015년 1만8600여명에서 지난해 5200여명으로 무려 72%를 줄였다.

불황이 오면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은 2차 노동시장이다. 하청에 '내려가는' 돈도 당연히 줄었다. 복지부터 시작해 임금 감소폭 등 근로조건 악화의 정도가 하청에서 훨씬 크고 깊었다.

물량팀 근로자들은 업종을 떠나거나 하청을 선택했다. 원래 '유연했던' 고용은 '불안해' 졌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저렴한 가격 책정으로 내수 시장에서도 치킨게임을 벌인다는 비판이 있었을 정도라, 소속 하청업체의 상황은 더욱 안 좋았다. 노조에 기댔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하청지회는 단체협약조차 없었다고 한다. 워낙 인력이 유동적인 업계 특성상 노조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도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하청업체는 하도 망해나가서 정확한 숫자도 모르고, 그냥 연간 규모로 추산하는 게 편하다"고 말했다. 업태가 무너지자 화려한 화장 뒤에 숨겨져 있던 민낯이 드러났다.

○"네 탓이오"…10년 넘게 개혁 없는 조선업

조선업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력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조선사들이 고부가가치 기술은 보유하지 못하고, 조립 부문 같은 영업이익을 내기 어려운 부분을 주로 맡다 보니 이익을 남기려면 하청업체와 물량팀을 착취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씨는 “원청은 인건비 아끼려 하청을 닦아세우고, 하청도 인건비 아끼려 물량팀을 썼다. 호황 때는 몰랐지만 위기가 닥치니 부조리한 구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다만 이런 구조가 어느 한쪽만의 잘못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본사가 하도급의 사회적 문제를 모를까. 하지만 조선업처럼 업황 사이클 변동이 큰 분야에서는 노동 유연성이 필요악이다."

"전부 직접 고용? 좋은 얘기지만 현실성 없다는 것은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잘 안다. 조립기술로 먹고 사는데 전부 직접 고용하려면 원청 정규직 근로자와 노조가 근로조건을 대폭 하락하는 데 동의하면 가능하다. 이걸 원청 정규직 노조가 받을까. 이번에 원청 노조가 왜 맞불 집회를 했는지를 봐야 한다. 이건 대기업의 횡포나 노조 이기주의 문제로만 치부할게 아니라 조선업의 총체적 구조 문제다."

중요한 건 조선업의 근본적 구조를 개혁할만한 시도는 마지막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성 질환이자, 정치권 입장에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 싸움 중이라는 의미다.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와 정쟁화 시키는 '전 여당'도 썩 보기 좋지 않다. 5년동안 손도 못대놓고 이 때다 싶어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뻥카드'를 날리는 모습에 고개를 가로 젓는 사람들도 많다.

위기는 몰려오는데 네 탓만 하고 있는 정치권이 임진왜란을 연상시킨다. 세계 최초 철갑선을 만드는 민초들의 능력을 정쟁이 가로막는 상황도 비슷하다. 이번 파업을 세 확산 동력으로 삼으려는 노동계에 대해서도 "지난 5년간은 지낼만 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갑자기 힘들어진 거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조선업의 고질적 병폐를 재조명한 것엔 이번 하청지회 파업이 기여했다. 하지만 적법한 방법은 아니었다. 결국 이들에게 남은 것은 4.5% 임금 인상, 51일치의 임금 손실, 누군가의 체포, 지난한 법적 절차다.

이런 비극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정부가 이런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진정한 '개혁'을 시도해야 하는 이유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