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간 전출은 불법 파견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계열사 간 인력 교류를 활발히 하던 기업들은 이번 판결로 불확실성을 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파견과 전출의 기준도 처음 제시했다.

“계열사 간 전출, 불법 파견” 소송 제기

대법 "계열사간 전출은 불법파견 아니다"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14일 근로자 A씨 등 2명이 SK텔레콤을 상대로 청구한 근로자지위확인 등 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근로자 A씨가 SK텔레콤의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시다.

SK텔레콤은 2015년 플랫폼 사업과 관련한 신규 티밸리 사업을 추진하면서 계열사인 SK플래닛과 SK테크엑스로부터 플랫폼 관련 전문성을 갖춘 근로자들을 전출 받아 근무하도록 했다. SK텔레콤은 그 대가로 계열사에 해당 근로자의 인건비를 6개월마다 정산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전출 근로자들에게 직접 임금을 지급했다. 2017년 티밸리 사업이 종료되며 근로자들은 원소속사로 복귀하게 됐다.

이에 전출 근로자 A씨 등 2명은 “SK플래닛과 SK테크엑스는 근로자파견업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파견 사업자”라며 “파견법에 따라 SK텔레콤이 나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6조의2는 “허가 없는 파견업자로부터 파견 근로자를 제공받은 ‘사용 사업주’는 파견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SK텔레콤 측은 “전출은 인력 교류와 경력 개발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며 “파견법을 적용해야 하는 파견이 아니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SK텔레콤 측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019년 2심인 서울고법은 1심을 뒤집고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을 두고 산업계에 파문이 일었다. 이 판단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될 경우 기업들은 전출 받은 근로자들을 전부 직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효율 향상을 위한 전출…파견 아니다”

대법원은 다시 원심을 뒤집고 SK텔레콤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SK플래닛 등 계열사가 다수의 근로자를 SK텔레콤으로 전출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파견을 업으로 하는 자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SK플래닛 등의 주된 영업 목적 등을 감안하면 파견업자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또 “경험과 지식을 보유한 다수의 인력이 필요한 SK텔레콤이 플랫폼 관련 전문성을 갖춘 계열사로부터 적합한 인력을 받은 것은 동일한 기업집단 내에서 인력 효율성 확대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파견법은 파견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도모하는 데 입법 취지가 있는데, A씨 등은 고용불안 등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전출과 파견의 구별 기준도 처음으로 명확하게 제시했다. 재판부는 “파견법은 근로자 파견을 업으로 하는 자가 진행하는 파견에 적용된다”며 “파견의 △반복·계속성 △영업성 △규모 △파견 사업주의 사업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열사 간 전출은 근로자가 원소속 기업과 근로계약을 유지하되 휴직·사외근무 등의 형태로 차출된 기업에 근로를 제공하고 원소속 기업 복귀도 예정돼 있다”며 “전출된 직원과 원래 소속 기업 사이에 근로계약 관계가 온전해 복귀 후엔 기존 근로계약 관계가 현실화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파견과 외견상 비슷하지만 법률적으로 구분된다”고 판단했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계열사 간 전출은 영리적 목적의 파견과 다름에도 이번에 파기된 원심이 양자를 구별하지 않아 기업 인사 운영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었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계열사 간 전출이 파견법 규율 대상이 아님을 명확하게 해 대기업 인사 관행의 적법성을 인정한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