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힙합 아닌 아르앤드비…초등학교 졸업장·시집서 영감 얻는다"
스무살 빅나티의 낭만論…"음미해야 느껴지는 끝맛 같은 것"
"낭만적인 사랑에 조건은 별 상관없는 것 같아요.

감정들을 잘 간직하고 시간이 지나도 온전히 기억하는, 그런 게 낭만적인 사랑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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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빅나티는 26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낭만(浪漫)을 두고 "음미해야 느껴지는 끝맛 같은 것"이라며 "사랑이라는 단어는 입안에서 막 터져 나온 '첫맛'이지만 낭만은 끝맛처럼 오롯이 간직해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3년생으로 올해 우리 나이로 갓 스무살 청년이다.

신장개업 식당에서 노포의 맛을 발견한 것 같은 놀라운 대답이었다.

빅나티는 "낭만은 과거를 동경하는 측면도 섞여 있는 것 같다"며 "1980∼1990년대를 살았던 분은 2020년대가 돼서야 그때를 그리워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시절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는 것 또한 낭만"이라고 부연했다.

전도유망한 이 아티스트가 낭만론을 꺼내든 이유는 그가 최근 발표한 두 번째 미니음반의 이름이 바로 '낭만'이기 때문이다.

음반에는 4월 선공개된 '정이라고 하자'와 타이틀곡 '낭만교향곡'을 비롯해 총 12곡(CD 기준)이 빼곡하게 담겼다.

말이 미니음반이지, 정규 못지않게 탄탄하고 알찬 구성이 돋보인다.

음반(음원 사이트 기준)은 인트로격인 '낭만이라고 부르기로 하였다'로 시작해 클래식 선율이 돋보이는 '낭만교향곡',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한 연애의 환희를 표현한 듯한 '러비더비'(Lovey Dovey), 끝내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거친 감정을 담아낸 '결혼행진곡'까지 짜임새 있는 스토리라인을 자랑한다.

빅나티는 "전작에서는 서사가 없었다"면서도 "이번에는 나의 뮤즈 같은 친구를 생각하며 스토리라인을 떠올렸다.

'정이라고 하자'처럼 사실에 기반을 두고 만든 노래도 있고, '결혼행진곡'처럼 상상을 음악으로 풀어낸 노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낭만'이라는 키워드를 꺼내 든 것과 관련해서는 "요즘 사회는 1970∼1980년대보다 덜 끈끈해진 느낌이 있다"며 "과거에는 삐삐로 연락하면서 약속 시간을 잡지 못해 안절부절못하지 않았느냐. 요새는 곧바로 휴대전화로 연락하니 낭만이라는 단어가 불필요해진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더는 잘 쓰지 않는 말이 됐다"며 "이 잊혀가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 상기시켜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빅나티는 우리나라 최고 명문 고등학교로 꼽히는 대원외고에 재학 중이던 2019년 엠넷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8'에 출연해 단박에 유명세를 떨쳤다.

첫 무대에서 선보인 자유분방한 싱잉랩은 3년이 흐른 지금도 시청자들 사이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회자한다.

그는 "그때의 경험은 강렬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며 "방송 직후에는 치기 어린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다시 보기 싫었는데, 최근에 보니까 너무 좋더라. 17살의 내가 기록됐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쇼미더머니 8' 당시에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앨범을 만들거나 음악적으로 계산하는 것 등등 정말 아는 게 없었죠. 오히려 그래서 더욱 순수하고 멋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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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나티는 "부모님도 이제는 내가 음악에 대한 확신이 있는 걸 아셔서 응원해주신다"면서도 "나는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는 성격은 못돼서 나중에 대학은 꼭 가고 싶다.

지난해 수능을 보긴 했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보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었다"고 말하고서 웃었다.

음반 수록곡 '결혼행진곡'은 미성 혹은 물 흐르는 듯한 싱잉랩으로 잘 알려진 빅나티의 거친 래핑을 접할 수 있는 노래다.

그의 말을 빌리면 친구가 결혼할 때 깽판 치는 노래란다.

빅나티는 "극단적인 낭만을 표현하고자 성사되지 못한 사랑을 표현했다"며 "노래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이란 게 다양하다고 판단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분노는 일반적으로 많이 표출하는 감정이 아니지 않느냐"라며 "저는 제가 분노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서 녹음하니 색다르게 들렸다"고 되짚었다.

음원 사이트 기준 마지막 트랙인 '마침표,'는 자신과 뮤즈와의 결말을 '마침표' 찍기에는 못내 아쉬운 감정이 들어 쉼표를 넣었다고 했다.

스무살 빅나티의 낭만論…"음미해야 느껴지는 끝맛 같은 것"
"가볍게 낸 앨범은 아니기에 후련하고 뿌듯한 마음이 커요.

정규가 아니라 미니음반으로 낸 이유는 정규란 '명함' 같은 느낌이라 조금 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거든요.

이번 음반을 통해 제 고민의 답을 들려드릴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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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래퍼 혹은 힙합 뮤지션으로 각인돼 있지만, 이번 음반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아르앤드비(R&B)로 내세운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힙합이라는 '안전망'을 스스로 걷어내고 더 넓은 음악의 세계로 나가고 싶었단다.

빅나티는 이에 관해 묻자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 힙합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힙합이란 장르보다는 문화로, 사는 방식이 부합해야 한다.

나는 힙합을 너무 사랑하지만 스스로 힙합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성숙하게 말했다.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빅나티는 진지한 사유를 즐기는 서동현(본명)이기도 했기에 이 둘을 결국 떼어낼 수는 없다는 고민의 결과다.

그러면서 "나는 평생 아르앤드비라고 생각한다"며 "이 말은 내 (래퍼라는) 한계를 뚫어줄 수도 있는 말이면서도 부담을 실어 주는 말일 것이다.

물론 랩을 도구로 사용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창작의 원천이 무엇인지 넌지시 물어봤다.

빅나티는 "나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볼 때마다 '치트키'처럼 영감이 떠오른다"며 "연차 있는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도 자연스럽게 예스러운 작법이나 표현법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쇼미더머니 8'라는 강렬한 설정으로 책을 시작한 느낌"이라며 "이번 음반을 통해 이 책의 챕터 원은 열심히 잘 마무리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거냐고요? 과거에는 억지로 제 삶의 결을 바꿔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그 고민의 끝에 다다른 지금에서는 내 방식대로 살겠다고 생각했어요.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추후 대학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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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