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 조치에도 아이폰이 시장에 이렇게나 많이 유통되고 있다니 신기하네요."

이란에서 관광업을 운영 중인 알리(가명)는 최근 러시아인 여행객들의 관광 루트를 대폭 조정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페르시아 유물과 미술품 등을 관람하는 일정 위주로 짰었지만, 이제는 러시아인들이 수도 테헤란의 기업과 시장 등을 방문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쟁 이후 '제재를 우회하는 꿀팁'을 이란 현지에서 전수받기 위한 러시아인들의 관광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은 제재 일환으로 러시아와의 교역을 단절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란이 몇 안되는 우방국이자 '피제재 선배 국가'인 셈이다.

알리는 "테헤란 상점가를 둘러본 러시아인들은 애플과 보쉬, 필립스 등 미국과 유럽의 제품들이 대거 유통되고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전했다. 4년 전 미국 주도로 이란과의 금융 및 제품 거래 등이 대폭 금지됐는데도 미국의 대표 상품인 애플 아이폰이 이란 시장에서 떡하니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이란 핵합의(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뒤 이란에 대한 각종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어서와 제재는 처음이지?"…러시아에 '꿀팁' 전수하는 나라
FT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엔 한달 평균 40명의 러시아인 관광객들이 순수 관광 목적으로 알리의 사업장을 찾았다. 올 들어 전쟁 이후엔 지난 한달 동안에만 160여명의 러시아인들이 방문했다. 대부분 이란산 제품을 구입하거나 이란 현지 기업인들의 조언을 듣기 위해 출장 온 러시아 사업가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리는 "유럽·미국산 제품을 살 수 있는 전 세계 암시장에 대한 접근성 측면에서 러시아인들은 이란인들에 한참 뒤처져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에서는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수혜자"라는 분위기도 커지고 있다. 이란 강경파 정부의 한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알라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해결 등에 집중하느라 이란 문제를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와의 무역 규모가 늘어난 것도 이란으로선 호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올해 1분기 이란과 러시아의 교역 규모는 22억달러(약 23조원)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에 비해 10% 이상 급증한 수치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