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해외수주 '트라우마'에 갇힌 건설사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어닝쇼크 트라우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 만난 건설업계 전문가는 대·중소형사가 너나없이 국내 주택시장에 ‘올인’하는 건설산업의 현 상황을 ‘위기’라고 진단하며 이같이 우려했다. 그는 “국내 건설사들의 공격 본능이 사라진 게 가장 큰 걱정”이라고 했다.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해외 수주 실적을 들여다보면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10년 716억달러를 찍었던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액은 지난해 306억달러로 반 토막에도 못 미쳤다. 해외 수주의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10대 건설사(시공능력평가 기준) 수주액 역시 2014년 503억달러에서 2019년엔 152억달러로 급락했다. 올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수주 반토막에 주택사업 안주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움츠러드는 동안 세계 건설시장은 2015년 9조8405억달러 규모에서 올해 13조9419억달러로 매년 커지고 있다. 최근 7년 새 40%가량 시장 규모가 커졌지만 국내 건설사의 수주액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한때 간판 수출역군이던 국내 건설산업은 2013년 어닝쇼크를 기점으로 급격히 위축됐다. 국내 기업 간 제살깎기식 저가 수주, 수행 역량을 벗어난 과잉 수주 여파로 삼성엔지니어링, GS건설, 대우건설, DL건설 등은 2013년부터 5년간 어닝쇼크 충격에 시달렸다. 이들 회사가 해외 수주에서 낸 부실 규모만 8조7000억원에 달했다. 수주 중심의 왜곡된 인센티브제도 부실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저가 수주에 따른 인센티브는 즉각 이뤄진 반면 사업 부실화로 인한 책임은 한참 뒤에나 이뤄지는 왜곡된 보상 체계가 구조적 부실을 낳았다는 지적이다. 3~5년 임기의 최고경영자(CEO)로선 수익성 여부를 떠나 ‘선(先)수주’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런 복합적 악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2013년부터 국내 건설사에 해외 수주는 한순간에 ‘악몽’이 됐다.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 ‘트라우마’의 시발점이다.

반면 해외 영토를 잃은 국내 건설사들의 주택시장 편식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한때 해외 매출 비중이 50%에 육박했던 대형 건설사들의 포트폴리오에서 주택 비중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 대우건설의 지난해 주택 비중은 처음으로 60%를 넘어섰다. GS건설과 DL이앤씨의 주택 비중도 각각 67%, 65%로 웬만한 주택전문업체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민·관 해외 개척 머리 맞대야

국내 건설사들이 주택시장에 집중하는 사이 글로벌 시공 경쟁력은 2017년 7위, 2018년 10위 등 매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8년 해외 건설 매출 기준 상위 20위 중 중국 기업이 6개인 반면 한국은 현대건설 단 한 곳뿐인 게 국내 건설산업의 현주소다.

최근 들어 국내 건설사의 이 같은 ‘천수답’ 포트폴리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 원자재 가격 급등 영향으로 국내 주택시장이 위축되고 있어서다. 해외 먹거리가 부실한 상황에서 그동안 올인해온 주택시장까지 타격을 받을 경우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경쟁력 약화를 개별 기업의 책임으로만 돌린 채 손 놓고 있어서는 대안을 찾을 수 없다. 갈수록 ‘갈라파고스’화돼 가는 건설산업 생태계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 예전의 ‘공격 본능’ 회복을 위해 정부와 건설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건설 규제 개혁과 생태계 리셋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