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에 매물 안내문이 걸려있다. 사진=뉴스1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에 매물 안내문이 걸려있다. 사진=뉴스1
수도권 아파트 매물이 늘어나고 있지만 거래절벽도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는 윤석열 정부의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조치에 몸값을 낮춘 매물이 풀리고 있다. 하지만 매수 심리가 이미 식어버린데다 '지켜보자'는 관망세까지 더해져 거래가 뜸한 상태다.

11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시장에 나온 수도권 아파트 매물은 19만6294건에 달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1년간 배제하겠다는 발표를 한 직후인 지난달 1일 17만4423건에 비해 12.5% 증가한 수치다. 지역별로 인천이 2만2232건에서 2만5226건으로 13.4% 늘었고 서울이 5만1427건에서 5만7935건으로 12.6%, 경기가 10만764건에서 11만3133건으로 12.2%의 증가율을 보였다.

윤석열 정부는 10일 출범과 함께 향후 1년간 다주택자가 2년 이상 보유한 주택을 팔 때 6~45%의 양도세 기본세율만 적용하기로 했다. 그간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20%포인트, 3주택자는 30%포인트를 가산했다. 지방세까지 감안하면 다주택자가 규제지역에서 집을 팔 때 내야 할 최고세율이 양도차익의 82.5%에서 49.5%로 33% 낮아진 셈이다.

6월 전 팔면 양도세·종부세 절감…매물↑·호가↓

만약 주택을 3년 이상 보유했다면 장기보유 특별공제를 통해 양도차익의 최대 30%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3주택자가 규제지역에서 10년 보유한 주택을 팔아 10억원의 양도차익을 얻을 때 기존에 6억8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면 이제는 2억6000만원으로 4억2000만원이 경감됐다. 보유세 기산일인 6월 1일 이전 다주택을 청산하면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본 서울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본 서울 아파트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 때문에 일부 다주택자들이 주택 처분에 나서면서 수도권 곳곳에서 억 단위로 호가를 낮춘 매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밀리' 전용 84㎡ 호가는 19억3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9월 최고가로 거래된 21억원보다 1억7000만원 낮은 가격이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광교센트럴타운60단지' 전용 84㎡는 16억원대를 유지하던 호가가 12억원대로 하락했다. 화성시 산척동 '동탄더샵레이크에듀타운' 전용 84㎡ 역시 지난해에는 호가가 15억원에 육박했지만, 현재는 9억원대 매물도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낮춘 몸값이 실거래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신고된 아파트 거래 건수는 58건으로, 지난달 1205건의 5%가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한국부동산원도 5월 첫째 주 수도권 매매수급지수를 92.3으로 집계했다. 매수심리가 여전히 위축됐다는 의미다.

추가 하락 기대하는 매수자·차라리 보유세 낸다는 매도자

일선 중개업소들은 다주택자들은 이달 내 주택을 처분하려 가격을 낮추고 있지만, 낮아진 호가만큼 매수세도 떨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송파구 문정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매물이 늘면서 시세도 낮아졌지만, 정작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집주인들의 전화만 온다"고 토로했다.

화성시 산척동의 공인중개사도 "지난해 연락처를 남겼던 매수 대기자들에게 저렴한 매물이 나왔다고 알렸지만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반응이 돌아왔다"며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더 내려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집주인들은 지난해 최고가를 기준으로 1억원 넘게 낮췄다고 생각하고 매수 대기자들은 집값이 계속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간을 맞추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낮춘 가격에도 집이 팔리지 않자 아예 매도를 포기하는 집주인도 발생하고 있다. 수원시 이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집을 빨리 팔고 싶다는 매도자가 있어 (급매로 예상했던 가격보다) 집값을 더 낮춰야 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그냥 안 팔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갈아타기를 하려던 매도자였다"며 "가격을 너무 후려치는 것 아니냐고 따졌는데, 연락도 없고 매물도 없는 것을 보니 결국 갈아타기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정동의 공인중개사도 "집주인에게 가격을 더 낮추는 게 어떠냐고 권하면 일부는 '안 팔려도 그만'이라고 답하기도 한다. 제값도 받지 못하고 급하게 파느니 차라리 보유세를 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6월 전에 거래가 되면 매수자는 곧바로 종부세를 내야 한다. 그에 상응하는 매매가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며 "5월 내에 팔리지 않으면 다음 종부세는 내년 6월에나 부과되니 다주택자가 매도를 서두를 유인도 사라진다. 추후 보유세가 조정된다면 다주택자의 매도세도 수그러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