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거취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국민의힘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윤 당선인 측이 “인사청문회를 보고 판단하자”는 방침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미 나타난 자녀 입시 및 병역 비리 의혹만으로도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8일 당 최고위 회의에서 “국민의 보편적 상식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일이 정 후보자와 그의 가족에게 일어났다”며 정 후보자를 향해 “거취를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정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최고위원은 1990년생으로 이준석 당 대표의 측근으로 꼽힌다. 하태경 의원도 이날 MBC 라디오에 나와 “법리적 판단이 아니라 정무적 판단이 중요하다”며 “억울하더라도 자진 사퇴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 의원 등은 정 후보자의 문제가 불공정 논란으로 번지는 것에 큰 부담감을 표시했다. 국민 여론이 공정 이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가운데 ‘제2의 조국 사태’로 비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 최고위원은 “제기된 의혹과 정 후보자의 설명으로 볼 때 위법 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해충돌 논란이 벌어진 것 자체만으로 공정을 바랐던 국민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조국 사태를 떠올리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하 의원도 “자식들 의대 편입에 정 후보자의 사회적 자산이 작용했을 수 있고, 그 부분은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불공정한 것”이라며 ‘공정 이슈’를 언급했다.

반면 윤 당선인 측은 사퇴 압박에 선을 긋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 가운데 명확하게 사실로 밝혀진 비리가 없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 정국 초반부터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 다른 후보자에게로 화살이 돌아갈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 후보자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 앞에 모든 것을 열고 확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며 “청문회 자리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적임자인지 판단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도 기자들과 만나 “조국 문제하고 이거(정 후보자 논란)하고 비슷한 게 있으면 말해보라”며 “입시·병역 문제에 있어서 팩트로 밝혀진 게 있으면 얘기해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도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공정과 상식’을 브랜드로 내세운 윤 당선인을 대상으로 ‘내로남불’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동시다발 압수수색을 벌이지 않았냐”며 “잔혹하고 무자비한 공정의 잣대는 어디로 사라졌냐”고 비판했다.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도 “조 전 장관은 팩트가 있어서 70여 곳을 압수수색했냐”며 “수사도 하지 않고 팩트가 없다고 하는 것은 친구니까 수사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고 했다.

양길성/설지연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