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와 송파구 한강 근처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강남구와 송파구 한강 근처 아파트 전경.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뒤집혔다. 매수인이 큰 소리를 치는 이른바 '매수인 우위' 시장이 됐다. 돈줄이 조여지고 거래 가뭄이 이어지면서 매도인과 매수인의 처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매도인인 집주인은 일시적 1가구 2주택 등으로 집을 급하게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다보니, 매수인의 사정을 최대한 반영해주려 노력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들 또한 매수인들의 조건에 맞춰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8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하는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 주(28일) 기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90.5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다섯째 주(29일) 처음 기준선인 100 아래로 내려온 이후 14주 연속 100을 밑돌고 있다. 서울 매매수급지수는 86.8로 수도권 매매수급지수보다 낮고, 경기 91.7, 인천 93.9 등이다.

이 지수는 부동산원이 회원 중개업소 설문과 인터넷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수요와 공급 비중을 지수화한 것이다. 기준선인 100을 기준으로 '0'에 가까우면 공급이 수요보다 많고, '200'에 가까우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뜻이다.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사겠다는 사람보다 팔겠다는 사람의 비중이 커지고 있단 얘기다.

매수인이 귀해지다 보니 매도인이 매수인 조건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다. 시장 곳곳에서 이러한 현상을 포착할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집을 구하고 있는 A씨는 "최근 상암동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기존에 살고 있는 집 매도가 더뎌 일정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며 "새로 매수할 집의 집주인이 '매도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면서 사정을 봐주더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 뱅크
사진=게티이미지 뱅크
경기도 화성시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는 B씨도 “가격이 너무 비싸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집값을 조정할 수 있느냐고 슬쩍 물어봤는데 집주인이 충분히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얘기하더라"며 "협의를 통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집을 매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공인 중개 관계자는 "작년 집값이 폭등할 때는 집주인들이 계약하는 자리에서 수천만원씩 가격을 올려달라고 하거나, 계좌번호를 주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면서도 "최근엔 매수하려는 사람이 없다 보니 이런 집주인이 없을 뿐더러 매수인이 하는 요구를 대부분 맞춰 주는 편"이라고 했다.

다만 이런 상황은 집을 급하게 정리해야 하는 일시적 1가구 2주택자를 중심으로 발생한다는 게 현지 부동산 공인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일시적 1가구 2주택자는 조정대상지역 기준 새로운 주택을 취득하고 1년 이내에 기존 주택을 양도해야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어 기한 내 매도를 서두르는 것이다. 더군다나 시장이 침체되면서, 자칫하다 1년을 넘기게 되면 세금폭탄을 맞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들어 나오는 급매물들의 대부분은 일시적 1가구 2주택자가 비과세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 서둘러 내놓은 것"이라며 "집값을 더 받는 것 보다 세금을 덜 내는 게 유지하다보니 급매가 나온다"고 귀띔했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대선 이후까지 ‘기다려보자’는 심리도 있다. 마포구 한 공인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일시적 1가구 2주택을 제외한 일반적인 매도자 입장에서는 급할 게 없다"며 "당장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일단은 ‘기다려보자’는 심리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공인중개사는 "현재 시장은 거래를 억지로 틀어막아 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정상적이라 보기 어렵다"며 "누가 돼도 거래가 정상화될 것으로 보여 시장 참여자들이 대선 이후를 눈여겨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수도권 집값은 지난달 마지막 주(28일) 기준 0.02% 떨어졌다. 지난 1월 마지막 주(31일)부터 시작된 하락세는 5주 연속 이어지고 있다. 서울은 6주 연속, 경기도 5주 연속 내림세다. 인천은 4주 연속 내리다 지난달 마지막 주 보합권으로 돌아섰다. 급매물 위주로 거래되다 보니 집값이 내려가고 있다.

거래 절벽도 지속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내 아파트 거래 건수는 453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3842건보다 3389건(88.20%) 급감했다. 경기도에서도 지난달 2505건이 거래됐는데 전년 동기 1만5355건보다 1만2850건(83.68%) 쪼그라들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