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연간 자동차 판매량 가운데 전기자동차 비중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중국 및 유럽과 비교하면 저조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도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일본자동차수입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내 수입 전기차 판매량은 8610대로 전년(3200대)의 약 2.6배로 급증했다. 블룸버그는 "전체 자동차 판매 자체가 정체된 일본 시장에서는 작지만 놀라운 변화"라고 평가했다.

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2010년 "일본이 미국에 이어 테슬라의 가장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높은 데다가 메르세데스벤츠와 같은 고급 유럽 차동차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는 순수전기차 전환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닛산자동차가 10여 년 전 저렴한 전기차 리프를 내놓은 이후에도 전기차 판매는 크게 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정부와 자동차 업계는 도요타자동차의 프리우스를 필두로 한 하이브리드카 확대에 집중했다.

블룸버그는 하이브리드카에 초점을 맞췄던 일본 자동차 업계도 이제는 전기차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를 확대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커지고 있어서다.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머지않은 미래에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 완성차 업체들도 줄줄이 새로운 전기차 전략을 내놓았다.

일본 정부도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하이브리드카 산업을 육성한다는 당초 방침을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3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는 목표다. 2030년대 중반 휘발유 차량의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전기차 보조금도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전기차 보조금은 최대 80만엔(약 831만원)으로 기존 보조금보다 두 배로 증가했다. 블룸버그는 "소비자들의 전기차 접근성이 더 좋아졌다"며 "일본에 전기차를 수출하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로서는 고무적인 일"이라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테슬라에 관심을 두는 일본 소비자층에 주목하고 있다. 도시에 살면서 머스크 CEO 팬인 젊은층과 부유층 사이에서 테슬라의 인기가 높다는 평가다. 스기우라 세이지 도카이도쿄리서치 애널리스트는 "테슬라 시가총액이 도요타를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테슬라의 일본 내 브랜드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했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테슬라는 일본에서 차량 5200대 이상을 판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약 1900대)보다 약 2.7배 증가한 규모다.

테슬라재팬은 지난해 2월 모델3 롱레인지 모델을 500만엔(24%) 할인해 판매했다. 투 르 시노오토인사이츠 이사는 "조만간 독일 베를린 기가팩토리에서 생산된 물량이 온라인을 통해 풀리게 될 것"이라며 "2022년에는 중국을 비롯해 일본 한국 인도 등에 대한 테슬라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테슬라가 일본에서 예상보다 고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자동차 컨설팅 업체 카노라마의 미야오 다케시 애널리스트는 "일본 자동차 회사는 세계적으로 강하지만 국내에서는 더 강하다"며 "외국 자동차 기업들에는 매우 공략하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했다.

다케시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도요타가 공개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BZ 시리즈와 테슬라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내다봤다. 도요타는 전기차 전환을 위해 35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닛산 제휴사인 르노와 미쓰비시는 5년간 260억달러를 들여 35대의 전동화 차량을 출시할 예정이다.

일본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 충전소 확장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닛산은 이미 충전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으며 더 많은 충전소를 지을 예정이다. 도요타는 2025년까지 전국의 모든 대리점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테슬라 충전소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폭스바겐 재팬은 올해 말까지 90~150kW급 급속충전기를 200여개 지점에 설치할 예정이다. 스텔란티스도 충전망 확충을 위해 에너지 업체와 협의를 시작했다. 폰투스 해그스트롬 스텔란티스 재팬 CEO는 "사실 인프라 구축은 제조업체가 할 일은 아니다"며 "일본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