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표 재건축’으로 불리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참여를 추진 중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압구정2구역).  /한경DB
‘오세훈표 재건축’으로 불리는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 참여를 추진 중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압구정2구역). /한경DB
정부는 지난 ‘2·4 대책’에서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해 공공기관이 직접 사업 주체가 돼 재건축을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반응은 싸늘했다. “강남 아파트를 주공 아파트로 만들겠다는데 누가 찬성하겠냐”는 핀잔만 들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들고나온 신속통합기획에 대한 반응은 달랐다. 민간(조합)을 사업 주체로 인정하고 속도를 빠르게 해주겠다고 하니 강남의 간판 재건축 아파트들이 속속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압구정에 ‘오세훈표 재건축’ 바람

강남도 속속 '오세훈표 재건축'…대치 이어 압구정·신반포 참여
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24개 단지, 총 1만여 가구 규모인 압구정 아파트지구 일대에선 압구정 3구역(현대 1~7차, 10·13·14차, 대림빌라트 4065가구)을 시작으로 신속통합기획 참여가 확산하고 있다. 압구정 3구역은 지난달 30일 대의원회의를 통해 신속통합기획 참여를 확정짓고 7일 강남구에 신청서를 냈다.

이어 2구역(신현대 9·11·12차, 1924가구)이 대의원회의에 신속통합기획 참여 안건을 올릴 예정이다. 5구역(한양 1·2차, 1232가구)은 신청을 위한 이사회 결의를 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압구정 재건축은 2016년 이후 사실상 멈춘 상태다. 서울시가 압구정 24개 단지를 6개 특별계획구역으로 묶어 재건축하는 내용의 지구단위계획을 마련했지만 5년째 확정고시를 미루면서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 속도를 낼 수 있는 신속통합기획 카드가 제시되자 수용하는 구역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신속통합기획은 주민들이 뜻대로 재건축을 진행할 수 있어 최고 부촌인 압구정에서도 큰 거부감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기준으로 서울시가 접수한 신속통합기획 재건축 단지는 총 10곳이다. 압구정 3구역 외 △구로 우신빌라 △송파 한양 2차 △여의도 시범 △대치 미도 △고덕 현대 △송파 장미 △서초 진흥 △여의도 한양 △신반포 2차 등이다. 10곳 중 6곳이 강남권이다.

강남구에서는 대치동의 간판 재건축인 ‘우선미(우성·선경·미도)’ 중 한 곳인 미도가 참여했다. 입주 50년이 넘은 여의도의 대표 재건축 단지인 시범 역시 합류했다. 잠원동 신반포 2차는 요즘 각광받는 한강변 단지다. 송파 장미 역시 잠실에서 손꼽히는 입지를 가진 재건축이다. 이외 통합 재건축에 나선 개포 경남·우성 3차·현대 1차도 신속통합기획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치 은마도 신청을 위해 주민동의서를 걷고 있다.

공공성 어느 정도 확보될까

강남 재건축 단지들이 신속통합기획을 선택하는 것은 그동안 사업에 걸림돌로 작용한 높이 등 규제를 완화해주고 인허가를 빨리 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낮은 문턱도 강점이다. 선정위원회를 통해 신규 후보지를 선발하는 재개발과 달리 재건축 단지는 서울시가 별도 선정 기준을 두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주민설명회를 열어 사업성과 속도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구한 것도 흥행 이유”라며 “압구정 3구역의 경우 설명회 개최 후 얼마 되지 않아 참여가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공공성 확보를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지와 관련, 서울시와 조합이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시가 사업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것은 임대아파트 건립 등 일정 수준 이상의 공공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서울시가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에는 입체적인 토지이용계획과 경관 및 보행축 확보, 역사자원 보전, 에너지 저감, 교육환경 영향, 특화 디자인, 교통처리 계획 등이 담길 예정이다. 조합으로선 신속통합기획이 공공개발보다는 낫지만 100% 민간 개발에 비해서는 부담이 클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품성과 사업성을 꼼꼼하게 따지는 강남 재건축 단지의 잇따른 참여는 신속통합기획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며 “아예 멈춰 있던 ‘재건축 시계’가 돌아간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신속통합기획

서울시가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공공성과 사업성이 균형을 이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비구역 지정까지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제도. 정비구역 지정까지 걸리는 기간을 통상 5년에서 2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 원래 ‘공공기획’으로 불렸지만 정부 주도 공공개발과 헷갈리지 않게 이름을 변경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