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유지한 전술·뚝심으로 본선행 8부 능선…2달만에 사라진 경질론
본선서 강호 상대로도 통할지는 의문…"아무도 가 보지 못한 길"
'태극전사 맞춤옷' 벤투호 빌드업 축구…카타르에서 통할까
파울루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를 향한 '뚝심'이 한국 축구를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행 8부 능선까지 올려놨다.

벤투호는 17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타니 빈 자심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라크와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6차전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올해 일정을 마쳤다.

이날 승리로 한국은 6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이란(승점 16·5승 1무)에 이은 조 2위(승점 14·4승 2무)를 유지했다.

본선 직행 티켓이 각 조 2위까지에만 주어지는 가운데, 한국과 3위 아랍에미리트(UAE·승점 6·1승 3무 2패)와 승점 차는 8로 벌어졌다.

남은 경기는 4경기다.

UAE 이하 중위권 팀이 따라잡기 어려운 격차다.

'태극전사 맞춤옷' 벤투호 빌드업 축구…카타르에서 통할까
◇ 2달 만에 사라진 경질론…본선행 8부 능선 넘은 벤투호
지난 9월 국내에서 치른 1, 2차전 때만 해도 벤투호는 미덥지 못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불안하게 했다.

이라크와 첫 경기(0-0 무)에서 졸전 끝에 비겼고, 이어진 레바논과 2차전에서는 후반전 나온 권창훈(수원)의 골로 1-0 신승을 거뒀다.

10월 시리아와 3차전에서도 후반 43분에야 나온 손흥민(토트넘)의 결승골로 시리아에 2-1로 겨우 이겼다.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빌드업 축구' 무용론과 함께 그를 조기에 경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벤투호는 이후 3경기에서 확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원정팀의 지옥'이라는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 4차전에서 1-1로 비기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태극전사 맞춤옷' 벤투호 빌드업 축구…카타르에서 통할까
이어 이번 11월 A매치 기간에 UAE와 홈 5차전에서 압도적인 경기 끝에 1-0으로 이기더니 이라크를 상대로는 3점 차 대승을 거뒀다.

분위기는 두 달 새 확 바뀌었다.

벤투 감독을 향한 비난 여론은 완전히 잦아들었다.

김대길 축구 해설위원은 "이제 벤투 감독을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

자신의 축구 철학에 대한 비판을 '결과'로 완전히 불식시켰다"고 말했다.

역대 가장 수월하게 본선행 티켓을 따낸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로 평가된다.

당시 차범근 감독이 이끈 한국은 최종예선에서 6승 1무 1패의 성적을 냈다.

벤투호가 현재 흐름을 유지한다면 그때보다 더 안정적으로 본선행을 확정 짓게 된다.

김 해설위원은 "조기에 본선행 8~9부 능선을 넘으면서 벤투 감독의 팀 장악력은 더 높아지고, 선수들의 주전 경쟁이 뜨거워질 것"이라면서 "본선을 겨냥해 더 밀도 있는 준비를 일찍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태극전사 맞춤옷' 벤투호 빌드업 축구…카타르에서 통할까
◇ 상대가 누구건 한결같은 '벤투표 빌드업 축구'
결과보다 내용이 더 인상적이다.

벤투호는 최종예선에서 어떤 팀을 상대하건 한결같은 축구를 구사했다.

볼 점유율을 유지하며 후방부터 차근차근 공격 전개를 해 나가는 벤투 축구가 대표팀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소집 때마다 면면에 큰 변화가 없어 서로를 잘 아는 선수들은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로 상대 수비를 효과적으로 공략한다.

상대에 따라 전방 압박 시작 위치와 강도가 다를 뿐, 스타일은 매 경기가 '판박이'다.

2018년 8월 부임한 뒤 3년 넘게 '빌드업 축구' 한 우물만 뚝심 있게 판 결과다.

전술의 근간이 안 바뀌니 선수들의 전술 이해도는 매우 높다.

'태극전사 맞춤옷' 벤투호 빌드업 축구…카타르에서 통할까
그간 벤투호 주전으로 활약하던 공격수 황의조(보르도), 센터백 김영권(감바 오사카)이 부상으로 이번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벤투 축구에 익숙한 조규성(김천), 권경원(성남)이 이들의 빈 자리를 잘 메워줬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뚝심과 원칙으로 밀어붙인 벤투 감독을 인정 안 할 수가 없다"면서 "벤투호가 전술적 지속성과 안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어떤 선수가 선발로 나와도 틀이 유지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태극전사 맞춤옷' 벤투호 빌드업 축구…카타르에서 통할까
◇ 본선도 '지배'하려는 '돈키호테' 벤투…"아무도 가 보지 못한 길"
하지만 이 시점에도 해소되지 않은 불안감이 있다.

세계적 강호들을 상대해야 하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과연 '벤투표 빌드업 축구'가 통하겠느냐는 것이다.

누구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벤투 감독이 가려는 길은, 한국 축구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늘 한 수 위 상대가 경기를 주도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찾는 방식으로 본선을 준비해왔다.

본선에서 늘 자신을 '언더독'으로 규정한 한국은 경기를 지배하는 방향으로 조별리그 3경기를 준비한 적이 없다.

그런데 벤투는 마치 '돈키호테'처럼 본선에서도 '우리의 축구'를 펼쳐 보일 태세다.

'태극전사 맞춤옷' 벤투호 빌드업 축구…카타르에서 통할까
박 해설위원은 "벤투는 지난 3년간 고집스럽게 해온 대로, 본선에서도 자신의 축구를 펼쳐 보일 것"이라면서 "아무도 시도해 본 적이 없기에, 성공 여부는 예단하기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언젠가는 한국도 스스로 경기를 주도하는 전술로 월드컵 본선에 나서야 한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벤투 감독이 본선을 앞두고 '현실의 벽'에 부딪쳐 전술을 수정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김 해설위원은 "우리가 그러고 싶지 않아도 강팀과 경기를 치르다 보면 주저앉게 되는 상황이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벤투 감독도 본선을 앞두고 강팀과 평가전을 치르다 보면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