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국내 3만여 개 뿌리기업 중 ‘중국 리스크’가 가장 큰 업종은 주물이다. 주물은 고체 금속재료를 녹인 후 틀 속에 주입해 일정한 형태의 금속 제품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 조선, 항공기 등에 들어가는 부품 상당수가 주물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서병문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14일 “주물을 만드는 데 필수 소재인 후란수지, 페로실리콘, 페로마그네슘 등은 거의 중국에서 조달한다”며 “중국이 공급을 죄면서 가격이 올초 대비 두 배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주물을 만들 때 투입하는 자연성 경화제 후란수지는 100% 중국에서 조달하는 화합물이다. 독일과 일본 역시 중국에서 이 소재를 들여온다. 후란수지의 국내 유통가격은 올해 1월 t당 237만원에서 이달 440만원까지 치솟았다. 용해로에 넣는 촉매제인 페로실리콘 역시 작년 말 t당 141만원에서 이달 435만원으로 가격이 세 배 뛰었다. 같은 기간 페로마그네슘도 두 배 이상 가격이 치솟았다.

전선업계도 비상이다. 저전압 전력케이블의 절연물질(컴파운드)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가교제인 실란을 거의 중국에서 조달해왔는데, 중국이 생산량을 절반 가까이 감축했기 때문이다. 실란 가격이 작년 말 대비 현재 3~4배까지 치솟았다. 중국은 내년 2월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생산을 크게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란이 없으면 저전압 전력케이블 생산은 불가능해진다.

홍성규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전선업계에선 실란 공급이 막혀 ‘절연용 컴파운드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을 정도”라며 “컴파운드에 들어가는 마그네슘도 가격이 폭등해 전선업계가 비상”이라고 털어놨다.

중국에 의존하는 폴리에스테르사와 직물 등 섬유업계도 비상이다. 올 1~9월 국내로 들여온 중국산 폴리에스테르사는 무역액 기준 2억3600만달러, 폴리에스테르직물은 9700만달러에 이른다. 수입 의존도는 각 76.5%, 78.4%에 달한다. 김희동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산업정보팀장은 “최근 중국 경기가 좋아지면서 원사 원단을 자국 내에서 소비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전력난 등으로 원사 원단 생산량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선풍기와 전기밥솥, 에스컬레이터 등 생활 필수품도 중국 의존도가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9월 중국 의존도가 높은 수입품은 4320만달러어치를 수입한 에스컬레이터였다. 중국산이 100%를 차지했다. 이어 △망간제품 △전기밥솥 △조화 △토스터 순이었다.

중소기업계에선 정부의 전통 제조업 홀대가 '제2의 요소수 사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홍성규 이사장은 "중국의존도가 높은 소재나 부품들은 대부분 기술적으로 대단한 것도 아니고 원가 부담 때문에 한국에서 생산을 기피하는 것들"이라며 "정부가 고부가가치 산업만 집중 지원하고 기초 산업 지원을 등한시한 결과, 주요 공급망이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노동 규제로 제조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다보니 제조 공장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됐고, 결과적으로 중국 의존도를 심화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의현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1990년부터 현재까지 30년간 한국의 임금은 90%급증한 반면, 미국은 47.7%, 일본은 4.4% 증가했다"며 "노동 생산성은 크게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임금과 각종 노동규제로 기업들이 원가를 절감하려다보니 돈이 안되는 부품의 자체 생산을 포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안대규/김진원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