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총리 사면 요청, 영국 억만장자도 반대행렬 동참 국제이슈화
코로나 감염 이유로 집행 미뤄…"지능지수 낮아 vs 위법성 알고 있어"
싱가포르, '저지능' 사형수 형 집행 하루전 극적 유예(종합)
사형 집행일을 단 하루 앞두고 싱가포르 사법 당국이 말레이시아인 마약 밀수범의 사형 집행을 유예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것이 재판부가 밝힌 이유지만, 국제적 이슈로 번진데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올 전망이다.

9일 일간 스트레이츠 타임스 및 외신에 따르면 이날 싱가포르 대법원 격인 항소법원은 오는 10일로 예정된 말레이시아인 나겐트란 K 다르말린감(33)에 대한 사형 집행을 유예했다.

3인 재판부 중 한 명인 앤드루 팡 분 렁 판사는 재판 모두에 "우리는 나겐트란이 코로나19에 감염됐음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렁 판사는 이어 날짜가 후추 결정될 때까지 심리를 연기하고, 모든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사형 집행을 유예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형 집행 유예와 관련해 타당성, 상식 그리고 인간애를 언급했다.

전날 싱가포르 고등법원은 나겐트란에 대한 사형 집행을 항소법원 결정이 있을 때까지 유예했었다.

나겐트란은 21세이던 지난 2009년 4월 허벅지에 헤로인 42g가량을 감은 채 몰래 들여오려다 국경 검문소에서 체포됐고 이듬해 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최근 사형 집행일이 다가오면서 이 문제는 국제적 이슈가 됐다.

싱가포르 교정당국이 지난달 말레이시아의 나겐트란 모친에게 보낸 사형집행 통보 서한이 온라인에 올라온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

이후 그를 사면해달라는 청원 운동이 벌어져 7만명 이상이 서명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청원은 나겐트란이 협박을 당해 마약 밀수 범죄에 악용됐고, 지능지수(IQ)가 69로 낮은 만큼 사형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말레이시아 총리는 최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그에 대한 사형 집행을 유예하고, 사면을 다시 요청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물론 유엔 전문가들도 그에 대한 사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영국의 억만장자인 리처드 브랜슨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영국 인권운동가들은 싱가포르 인접국인 말레이시아와 태국 등 동남아를 순방하는 리즈 트러스 영국 외교부 장관이 이 문제에 개입할 것을 촉구했다고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보도하기도 했다.

나겐트란은 자신의 정신 연령이 18세 이하라면서, 지능이 낮은 이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비인도적 처벌로 국제관습법에 의해 금지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싱가포르 교정 당국도 지능이 낮은 죄수를 사형에 처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이 있다고도 주장했다고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전했다.

싱가포르, '저지능' 사형수 형 집행 하루전 극적 유예(종합)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나겐트란이 지능이 낮아 범죄에 이용됐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형을 선고했던 고등법원의 시 키 운 판사는 전날 언론에 나겐트란이 지능이 낮다는 주장에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시 판사는 정신 연령과 관련된 주장은 변호인의 의견에 기반한 것이며, 그는 의료적 전문지식도 없을뿐더러 나겐트란을 직접 만난 것은 지난 2일에 26분간 면담한 것이 전부라고 주장했다.

과거 이 재판을 맡았던 법원도 나겐트란이 마약 운반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마약을 허벅지에 감아 숨기려고 했으며 바지도 큰 사이즈로 입었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사형이 집행된다면 지난 2019년 이후 첫 사례가 된다고 AFP는 보도했다.

싱가포르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마약 밀매를 포함해 살인, 유괴, 무기 사용 등의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상대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해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