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 공급망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청한 시한이 9일로 다가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제출 정보 범위와 수위를 두고 막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두 회사는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민감한 정보는 제외하고 자료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자료 제출 여부를 두고 반도체 기업과 미국 정부 간 밀고 당기기가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8일 미국 정부 홈페이지와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대만 TSMC와 미국 마이크론, 이스라엘 타워세미컨덕터 등 20여 개 기업이 공급망 정보를 제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시한에 맞춰 자료를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기업들의 공급망 자료 제공은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미국 백악관과 상무부는 지난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 인텔 등 글로벌 기업들에 △반도체 재고 △주문 △판매 △고객사 정보 등 공급망 정보 설문지에 대한 답변을 11월 8일(현지시간)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반도체 기업들은 사실상 ‘압박’으로 받아들였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국방물자생산법(DPA)을 근거로 정보 제공을 강제할 수 있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투트랙 전략을 썼다. 각국 정부의 외교·통상 라인을 통해 우려 사항을 전달하는 동시에 민감 정보를 제외한 자료 제출을 준비했다. 실제 TSMC는 자료에서 올해 매출이 사상 최대인 566억달러(약 67조원), 연매출 증가율이 24.4%에 달한다고 밝혔지만 특정 고객사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실적 발표를 통해 알려질 내용을 중심으로 자료를 제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타워세미컨덕터도 고객사와 관련해 특정 기업을 언급하는 대신 ‘휴대폰 산업’, ‘데이터센터 산업’ 등으로 표현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비슷한 전략을 취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TSMC와 마찬가지로 고객사 정보는 철저히 영업비밀에 부칠 것”이라며 “가격이나 리드타임 등도 최대한 오차범위를 넓게 잡고 자료를 작성하는 방법을 취할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와 반도체 기업 간 기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정부가 추가 자료 제출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정부에 마냥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미국도 세계 기업들로부터 반도체 투자를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상황을 극단으로까지 끌고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