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비겁한 연금 개혁 회피
수술을 해야 한다. 정부도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떻게 손을 대더라도 욕먹을 게 뻔하다. 좌고우면하던 정부는 결국 국회에 결정하라며 ‘퉁’ 쳤다.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국회를 설득해도 모자랄 판인데 될 리 없다. 바로 연금개혁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연금개혁을 외면한 유일한 정부로 남게 될 전망이다. 이번 정기국회가 사실상 개혁안을 다룰 마지막 기회다. 하지만 이미 여의도는 내년 대통령 선거에 온 신경이 가 있다. 여론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게 뻔한 ‘폭탄’에 손을 댈 리가 없다. 정부의 의도적인 책임 방기다. 연금 재정의 악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청년들이 떠안아야 할 부담은 더 커지게 됐다.

연금개혁 외면한 유일 정부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된 뒤 모든 정권은 좌우를 막론하고 공적연금에 칼을 댔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의 보험료를 올리거나 연금 지급률을 낮추거나 또는 지급 연령대를 높이는 방안을 밀어붙였다. 그때마다 노동계 등 이해단체의 반발은 강력했다. 하지만 연금 제도가 지속되려면 불가피했다. 초기 5.5%의 공무원연금 보험료율이 지금 18%대로, 3%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지금 9%로 오른 것은 이전 정부들이 십시일반 짐을 나눠 진 결과다.

이번 정부는 그 부담을 지기를 거부했다. 정부 초기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2018년 8월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의 개편 초안에 여론이 반발하자 청와대는 “정부안이 아니다”고 발을 뺐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도 (개편안에) 납득할 수 없다”며 거들었다. 그해 11월 보건복지부가 정부안을 내놨을 때도 청와대는 왜 이런 걸 꺼내느냐는 듯 불편한 심기가 가득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반려하더니 언론에 미리 공표됐다는 이유로 복지부 간부들의 휴대폰을 압수했다.

정부는 이후 네 가지 개편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개혁과는 한참 멀었다. 그나마 어렵게 나온 이 반쪽짜리 개혁안마저도 폐기 처분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정치권은 모르쇠다. 대선이 다가오자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이 ‘쌈짓돈’을 우려먹을까에 더 몰입하고 있다. 여당 내에서 “한국판 뉴딜펀드에 국민연금을 활용하자”거나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마련에 재원으로 쓰자”는 주장이 나오더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일산대교 통행료가 비싸 경기도민들이 고통받는다며 국민연금 수익을 헐기로 했다.

마지막 '골든타임'마저 방치

지난 국정감사는 연금개혁의 불을 지필 마지막 기회였다. 연금개혁 특위라도 구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길 기대했지만 엉뚱한 비판거리만 쏟아졌다. 게임주에 왜 투자하냐며 윽박지르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해외 기업 투자를 막아야 한다는 황당 주장도 나왔다. 국민연금 이사장 출신인 한 의원은 느닷없이 국민연금이 헝다에 투자해 수백억원의 평가손실을 냈다는 지적을 내놨다. 국민연금이 가장 공격적으로 헝다에 투자한 2016~2018년 당시 수장은 본인이 아니던가.

군인연금 공무원연금에 이어 사학연금도 내년 적자로 돌아선다. 국민연금은 이대로면 20년 안에 적자다. 수술해서 바꾸고 연명하지 않는다면 남은 시간은 결코 많지 않다. 최혜영 민주당 의원이 최근 내놓은 자료를 보면 국민연금 개혁을 방치한 사이에 국민이 추가로 내야 할 부담액이 5년 새 약 37조~60조원에서 52조~81조원으로 15조~21조원 늘어났다. 연간 2조9476억원을 국민이 더 떠안는 것이다. “나만 욕먹지 않으면 된다”는 정치인들의 비겁함이 만든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