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명예회복·화해권유 구체적 작위의무 부담"
헌재 "'춘천 강간살인' 명예회복·화해 정부조치 적절"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춘천 강간살인 사건 유족이 정부가 명예회복과 화해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각하됐다.

헌재는 춘천 강간살인 사건 유족이 낸 행정부작위 위헌확인 헌법소원 심판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고 6일 밝혔다.

춘천 강간살인 사건은 1972년 9월 춘천시 우두동에서 만화방을 운영하던 정모 씨(당시 36세)가 경찰 간부의 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건으로 영화 '7번방의 선물'로도 알려졌다.

정씨는 15년간 무기수로 복역한 뒤 1987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무죄를 주장해온 정씨는 재심을 통해 2011년 무죄가 확정됐고 형사보상금을 지급받았다.

정씨의 유족들은 정부가 과거사정리기본법에 따라 유족의 피해·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가해자 측에 화해도 적극적으로 권유하지 않았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또 형사보상 외에 고문행위 피해 등에 대해 적절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실효적 권리도 보장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34조는 국가가 피해자의 피해·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가해자 측에 화해 권유를 적극적으로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헌재 "'춘천 강간살인' 명예회복·화해 정부조치 적절"
헌재는 명예회복·화해권유 조치와 관련해 "과거사정리법은 명예회복·화해권유를 위한 정부의 구체적 작위 의무를 규정하는 조항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다만 명예회복과 관련해서는 형사보상금이 지급됐고 형사보상 결정이 관보에 게재된 점, 과거사 조사보고서가 공개된 점 등을 근거로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다고 판단했다.

화해 권유에 대해서도 정부가 포괄적인 사과 계획을 추진 중이고 가해자들에게 진실규명결정 통지서를 송달한 점에 비춰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상 조치에 대해서는 헌법 해석상 정부가 형사보상금 외에 위로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봤다.

반면 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명예회복 조치와 관련해 "피해자들의 고통은 형사보상 절차로는 충분히 회복될 수 없다"며 유족의 청구를 인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화해 권유와 관련해서 유남석·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경찰청장·행정안전부 장관·법무부 장관 모두 유족에게 명시적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없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이석태 재판관은 과거 이 사건 재판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이번 재판을 회피했다.

화해 권유에 대한 판단에서 재판관 의견이 4(위헌) 대 4(각하)로 나뉜 데 대해, 주문에 '기각'으로 표시해야 한다는 이견이 있었으나 다수 의견에 따라 '각하'로 결론이 났다.

이는 위헌과 각하 의견이 동수인 경우 각하로 결정해야 한다는 첫 결정례다.

헌재 관계자는 "국가의 작위의무 이행에 대한 재판부 판단은 엇갈렸지만 국가가 명예회복·화해권유에 대한 구체적 작위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을 확인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