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던 곡물 구리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앞서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들이 ‘원자재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이 시작됐다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지만 지나친 가격 상승이 오히려 수요 경색을 일으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국제 상품 선물시장에서 구리 등 금속류와 원유 및 천연가스, 곡물류, 목재 등의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블룸버그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20개 원자재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5주 만에 원자재 가격 하락 베팅으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구리 4.1% 급락…목재 시장도 출렁

원자재 '슈퍼사이클'이라더니…구리·곡물·원유값 일제히 급락
구리 선물(3개월물)은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장중 한때 t당 9977.50달러로 전날보다 4.1% 하락했다. 이는 3월 4일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구리 선물은 지난 10일 장중 사상 최고인 t당 1만747.50달러까지 오른 뒤 1만374.0달러로 마감했다. 아연 가격도 3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이후 이날 t당 2987.50달러로 마감해 하락세로 바뀌었다.

최근 t당 230달러까지 치솟았던 싱가포르거래소 철광석 선물 가격은 t당 205.10달러로 4.2% 내려갔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의 투기 단속과 세계 3대 광산업체 중 하나인 BHP그룹의 최대 규모 광산 개발로 인해 철광석 가격이 이틀간의 반등세를 멈췄다”고 설명했다.

유가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장중 5.4% 추락했다. 최근 6주 사이 가장 큰 하락폭이다. WTI는 전 거래일보다 2.13달러(3.3%) 떨어진 배럴당 63.3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주간 원유 재고가 132만 배럴 늘어난 4억8601만 배럴로 집계됐다고 발표한 것도 유가 하락을 부추겼다. 이날 원유 재고는 3주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뉴욕상업거래소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2.4% 하락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소맥 가격은 3.8% 떨어져 거의 한 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곡물류 값도 전반적으로 1~2%가량 하락했다.

목재 선물시장의 출렁임도 두드러졌다. CME 목재 7월물 가격은 장중 5% 급락해 1000보드피트(bf)당 1200달러 선까지 갔다가 오후 들어 다시 5% 이상 상승하는 큰 변동성을 보였다. 목재 값은 미국 주택 건설 열기 속에 급상승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 10일 1706.20달러 선을 기록한 뒤 약세를 보이고 있다.

가격 상승이 수요 억제

이런 흐름은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씨티그룹, 트라피구라그룹 등 유수의 투자은행과 원자재 거래 업체들이 원자재 시장의 새로운 골디락스(장기 호황)를 예견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발생한 하락세다. 앞서 시장에선 코로나19 위기를 벗어나고 있는 미국과 중국 등에서 건설·인프라 경기가 살아나면서 원자재 수요가 늘고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특히 지속가능 발전에 대한 세계적인 공감대 속에 친환경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것도 호황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지나친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 공포를 불러일으키면서 수요 재개 심리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국 3위 닭고기 생산업체인 샌더슨팜스는 철강 등 건축자재 가격 인상에 대응해 신규 가공 공장을 짓기로 한 계획을 보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회사 스톤엑스의 원자재 투자전략가인 로빈 크로스는 CNBC에 “최근 지나치게 폭등한 목재 값이 수요를 억제했다”고 고점 이후 이어지는 하락세를 설명했다.

다니엘 브리스만 독일 코메르츠방크 애널리스트는 “경기 회복을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우세를 점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증시 하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장 참여자들의 위험 회피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가격 통제를 위해 원자재 시장 감독 강화에 나선 것도 중국발 수요 회복세에 대한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