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던 곡물·구리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앞서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들이 원자재 슈퍼사이클(장기호황)이 시작됐다는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지만, 지나친 가격 상승이 오히려 수요 경색을 일으킬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암호화폐, 주식시장 모두 급락한 가운데 국제 상품 선물시장에서도 구리 등 금속류와, 원유 및 천연가스, 곡물류, 목재 등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블룸버그가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20개 원자재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5주만에 원자재 가격 하락 베팅으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구리 4.1% 급락…목재 시장도 출렁

구리 선물(3개월물)은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장중 한때 t당 9977.50달러로 4.1% 하락했다. 이는 3월4일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구리 선물은 지난 10일 사상 최고인 t당 1만747.50달러까지 뛰어올랐었다. 아연 가격도 3년만의 최고치를 찍은 이후 19일 t당 2987.50달러로 마감하며 감소세로 돌아섰다.

원자재 시장조사업체 패스트카멧MB에 따르면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국제 기준물격인 호주산 중국 북부행 순도 62% 철광석은 장중 t당 216.16달러에 거래돼 3.5% 감소했다. 최근 t당 230달러까지 치솟았던 싱가포르거래소 철광석 선물 가격은 t당 205.10달러로 4.2%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의 투기 단속과 (세계 3대 광산업체 중 하나인) BHP그룹의 최대 규모 광산 개발로 인해 철광석 가격이 이틀간의 반등세를 멈췄다"고 설명했다.

유가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장중 5.4%까지 하락했다. 최근 6주 사이 가장 큰 하락폭이다. WTI는 전 거래일보다 2.13달러(3.3%) 하락한 배럴당 63.3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주간 원유재고가 132만 배럴 늘어난 4억8601만1000배럴로 집계됐다고 발표한 것도 유가 하락을 부추겼다. 원유재고는 3주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뉴욕상업거래소 천연가스 선물 가격도 2.4% 하락했다. CME에서 소맥 가격은 3.8% 떨어져 거의 한달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곡물류 가격이 전반적으로 1~2% 가량 하락했다.

목재 선물 시장의 출렁임도 두드러졌다. CME 목재 7월물 가격은 장중 5% 급락해 1000보드피트(bf) 당 1201달러까지 갔다가 오후 들어 다시 5% 이상 상승하는 큰 변동성을 보였다. 목재 값은 미국 주택건설 열기 속에 급상승을 이어왔었다. 그러나 지난 10일 1706.20달러선을 기록한 후에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출처=Bloom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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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디락스'라더니…가격상승이 수요억제

이는 골드만삭스를 비롯해 씨티그룹, 트라피구라그룹 등 유수의 투자은행과 원자재거래업체들이 원자재 시장의 새로운 골디락스(장기호황)를 예견한지 불과 몇주만의 하락세다. 앞서 시장에서는 코로나19 위기를 벗어나고 있는 미국과 중국 등에서 건설·인프라 경기가 살아나면서 원자재 수요가 늘고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특히 지속가능 발전에 대한 세계적인 공감대 속에 친환경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는 것도 호황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이날 "지나친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 공포를 불러일으키면서 수요 재개 심리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3위 닭고기 생산업체 샌더슨팜스는 철강 등 건축자재의 가격 인상에 대응해 신규 가공공장 건설 계획을 보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사 스톤엑스의 원자재 투자전략가인 로빈 크로스는 CNBC에 "최근 지나치게 폭등한 목재 값이 수요를 억제했다"며 고점 이후 지속되는 하락세를 설명했다.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대니얼 브리스만 애널리스트는 "경기 회복을 후퇴시킬 수도 있다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우세를 점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증시 하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장참여자들의 위험회피 전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가 가격 통제를 위해 원자재 시장에 대한 감독 강화에 나서는 것도 중국발 수요 회복세에 대한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한편 이날 미 농무부는 중국이 이달 들어 현재까지 옥수수 950만톤을 매입했다고 발표했다. 브라질과 미 서부 등 전세계 옥수수 생산지역에서 가뭄 등 이상기온이 계속되자 곡물 비축량을 늘리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농무부에 따르면 중국은 내년까지 전세계에서 약 2600만톤의 옥수수를 흡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만 37%를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