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의 총수(동일인)가 김범석 의장이 아닌 쿠팡 한국법인이라고 결론냈다.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한 전례가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해서다. 하지만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과의 역차별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들 기업은 이해진, 김범수 등 창업자가 모두 총수로 지정돼 있어서다. 일각에선 낡은 총수지정 제도를 더 이상 유지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29일 공정위는 ‘2021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범석 의장은 쿠팡의 총수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가 밝힌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기존에 외국계 기업집단은 국내 최상단 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 왔고, 현행 제도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데 따른 실효성이 떨어지고, 동일인을 김범석 의장으로 하든 쿠팡으로 하든 규제 대상 계열사 범위에 변화가 없다는 점 등이다.

이에 이미 창업자가 총수로 지정된 국내 기업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김범석 의장은 한국을 주요 거점으로 사업을 하고 있고, 그의 친족들이 모두 국내에 거주하고 있지만 이번 동일인 지정에서는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반면 네이버는 2017년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지분이 4%에 불과한 점을 근거로 총수 없는 기업집단 지정을 요청했지만, 공정위로부터 묵살당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2016년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공정위도 김범석 의장이 쿠팡 미국법인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점은 명백하다고 봤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점이 총수 지정의 큰 걸림돌이 됐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지정자료 제출을 누락하는 등 법위반 사안이 발생하면 형사처벌을 해야하는데, 법집행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어서다. 또 외국인의 경우 국내와 같은 친족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지도 애매했다.

공정위는 이번 쿠팡 논란을 계기로 현행 동일인 지정 제도의 미비점을 인정하고, 향후 제도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 동일인의 정의와 요건, 확인 및 변경 절차 등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을 추진하면서다. 현재 동일인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제도의 투명성이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참에 낡은 동일인 제도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동일인의 개념이 공정거래법에 도입된 1980년대 중반에 비하면 최대주주가 이사회를 뛰어넘어 경영활동을 하는 경영행태는 많이 변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다. 동일인 지정은 기업의 의사결정제도를 넘어서는 개인 지배구조를 정부 기관이 용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도 낡은 제도라는 평가다. 초법적인 총수의 존재를 정부기관이 인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경영권 승계 과정을 거치면서 총수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진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공정위는 “오너일가의 사익편취와 일감몰아주기 행태는 여전히 시장의 공정성을 방해하고 있다”며 “기업집단과 동일인 지정은 여전히 실효성이 큰 제도”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현대자동차(정몽구→정의선)와 효성(조석래→조현준)의 동일인을 변경했다. 정몽구 전 현대차 회장이 보유한 주력회사(현대차·현대모비스)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정 회장에게 포괄 위임한 점 등을 고려했다.효성도 조현준 회장이 최대주주이고, 회장으로 취임한 후 지배구조 개편, 대규모 투자 등 경영상 변동 있었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