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처벌과 모호한 규정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내년 시행 이전에 고쳐야 한다는 경제계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 시행에 들어가면 기업 활동 위축과 산업현장 혼란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다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최저 1년 이상 징역형을 내리고, 기업에도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징벌적 책임을 묻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제단체들은 중대재해처벌법 통과 후에도 지속적으로 정부와 여당에 법 손질을 요구해왔다. 손경식 경총 회장과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은 지난주 각기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을 만난 자리에서 보완 입법을 요청했다. 손 회장은 어제 한경과의 인터뷰에서도 “기업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제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만큼 기업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 상위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10곳 중 6곳이 법 시행 전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개정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로는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의무규정’을 꼽았다.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업 대표이사가 수백~수천 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장 사고를 이유로 대표를 감옥에 보내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일부 건설사 등에선 문제가 생겼을 때 최고경영자(CEO)를 대신해 형사책임을 질 최고안전관리책임자(CSO) 자리를 만드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기업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기업 의견을 수렴해 시행령을 명확히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시행령이 아니라 법 자체를 고쳐야 마땅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법 제정을 주도한 백혜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조차 법이 통과되자마자 “진행 과정을 보면서 개선해야 할 점이 있으면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충분한 숙의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계의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