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에서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고 했다. 말인즉슨 고신용자가 높은 대출이자를 물고 저신용자는 저렴하게 돈을 빌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구조적 모순’이라고까지 했으니 지금의 신용·대출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게 과연 국가 최고 정책기구에서 한 발언이 맞는 것인지 듣는 귀를 의심하게 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선의를 십분 감안하더라도 ‘금융=신뢰산업’이라는 업(業)의 본질을 망각하고 훼손하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다. ‘선진 신용사회’라는 대전제를 부정하고 ‘불신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불안감도 커진다. ‘금융 몰이해’를 넘어 ‘금융 문맹’을 의심케 한다.

고신용자가 양보 차원에서 고금리를 물어서 조성된 재원으로 저신용자들을 도와주는 금융시스템이 바람직하다는 게 문 대통령의 주장인 듯싶다. 하지만 그런 방식을 금융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것은 복지사업이자 사회사업이며 정부가 재정으로 감당해야 할 영역이다. 국가경쟁력의 핵심 축인 금융회사들의 돈을 뜯어 하는 것은 정의롭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국가신용등급이 높은 한국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국제금융시장에서 높은 이자를 물고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고 강제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연 27.9%였던 법정최고금리가 우리 정부에서 20%로 낮아지게 돼 기쁘다”고 한 것도 너무 단순한 논리다. 3년 전 27.9%이던 최고금리를 24%로 내린 뒤 저신용자 10명 중 2명이 약탈적 사채시장으로 내몰렸다. 연 20%로 더 내리는 이자제한법이 오는 7월 시행되면 또다시 57만 명가량이 그런 처지가 될 것이란 연구도 있다. 그래도 ‘이자인하 혜택을 보는 사람이 더 많지 않으냐’며 밀어붙이는 것은 절박한 소수를 외면하는 다수의 폭력일 뿐이다.

대통령 발언의 무게를 생각할 때 경제문제에서만큼은 신중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 고신용자를 불리하게 대우하는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고금리를 규제하면 저금리 사회가 오고, 부자 돈을 빼앗아 저소득층에 풀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해괴한 흑백논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