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한국판 유니목으로 활약

지금의 기아자동차가 있기까지는 몇 차례의 변곡점이 있었다. 그 중 1980년대 초에 있었던 봉고 신화는 현대차그룹의 인수만큼이나 중요했던 순간으로 꼽힌다. 당시 봉고 신화로 재기에 성공한 기아차는 소형 트럭 다변화의 일환으로 농업 종사자를 위한 보급형 트럭 출시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물이 '세레스(Ceres)'다.

세레스는 1983년 등장했다. 세레스의 핵심은 당시 300만원 대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전천후 트럭이었다. 세레스는 봉고를 기반으로 지상고를 높이고 앞뒤 범퍼를 치켜 올려 험로주파력이 강한 체격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차명은 로마 신화 속 농경의 여신인 세레스에서 가져왔다. 농업용 트럭 이름으로 제격이라는 판단이다.

이 트럭을 아시나요?④-기아차 세레스

외관은 봉고보다 작다. 농어촌의 좁은 골목길에서 기동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각진 차체와 사각형 커버에 담은 원형 헤드램프, 껑충한 차체는 세레스의 상징이었다. 지붕은 방수포로 덮어 원가를 줄였다. 1988년에 이르러서야 철판 지붕의 하드탑이 출시됐다.

실내는 이동, 수송의 용도에 집중한 나머지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편의품목은 라디오가 유일했다. 파워 스티어링 휠, 파워 윈도우 등은 사치였다. 계기판은 속도계와 연료계, 수온계, 방향지시 정도만 표시했다. 싱글 캡에는 3명이 탈 수 있었다. 적재함에는 그늘막과 역방향 벤치를 설치해 3명이 더 앉을 수 있었다.

엔진은 2.2ℓ 디젤을 탑재해 최고 60마력, 최대 14.5㎏·m를 발휘했다. 지금 1t 트럭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낮은 수치이지만 차체가 가볍고 동력 손실이 적어 성능이 턱없이 모자라진 않았다. 구조가 간결해 정비도 쉬웠다. 구동계는 뒷바퀴굴림 방식을 채택했다. 1986년이 돼서야 소비자 요구를 반영한 4WD가 출시됐다. 기계식 트랜스퍼 케이스를 장착한 4WD는 세레스를 진짜 전천후 트럭으로 만들어줬다.

이 트럭을 아시나요?④-기아차 세레스

세레스는 '한국판 유니목'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4WD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동력 인출 장치(Power Take Off) 때문이다. 양수, 탈곡, 분무 등 농기계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을 도로와 논밭을 자유룹게 오갔던 세레스도 할 수 있었던 것. 덕분에 세레스는 해외 시장에서도 은근히 잘 나갔다. 특히 중동과 남미, 아프리카 등에 적지 않게 판매됐다. 섀시는 카고, 덤프 두 가지를 얹었지만 탱크로리, 소방차 등의 특장도 주문할 수 있었다.

1992년 기아차는 세레스의 부분변경을 단행했다. 사각형 헤드램프와 그릴 장식을 더한 전면부가 특징이다. 안전성 향상을 위해 적재함에 있던 벤치는 없앴다. 1996년에는 최고 80마력의 2.4ℓ 디젤 엔진을 얹었다.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2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세레스는 새 엔진과 함께 편의성 향상 추세에 따라 파워 스티어링 휠, 에어컨 등의 품목을 더했다. 부드러운 인상을 연출한 새 원형 헤드램프도 특징이었다.

그러나 1997년 한국 IMF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기아차의 형세도 기울어졌다. 결국 기아차는 현대차에 인수되면서 대대적인 제품군 정리에 나서야 했다. 1999년 세레스는 엘란, 파크타운과 함께 라인업에서 사라졌다. 새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3에 대응하기 어려웠고 봉고보다 작은 체구가 안전상 문제가 된 탓도 컸다. 이후 기아차의 1t 4WD 트럭 계보는 프론티어, 봉고3가 이어 나갔다.

이 트럭을 아시나요?④-기아차 세레스

세레스는 비교적 최근 단종해 국내에서도 적지 않게 운행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2020년 10월 기준) 국내에 돌아다니는 세레스는 1만7,311대에 이른다. 한편으로는 캠핑용 오프로더와 리스토어를 원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


▶ 이 버스를 아시나요?④-GM PD-4501
▶ 이 트럭을 아시나요?③-REO M35
▶ 이 트럭을 아시나요?② 쌍용차 SY트럭
▶ 이 트럭을 아시나요?①-르노 매그넘